침대 머리맡에 앉아
최승자의 시를
읽어줘
그 좋은 목소리로
나의 사랑하는 시를 읽어줘
너의 목소리가 읊조리는 시를 들으며
나는 복통을 앓는 것처럼
데굴데굴
고통스러워하고
탄식하고
괴로워할게
이해하면 안 돼
바닥끝에 닿는
심연보다 깊은
심해 같은
쓸림 쓰라림 생채기 피와 구토 구역질과 어지러움
닿아선 안돼
완벽한 시였어 낭송이였어
무슨 얘긴지 몰라 고개를
갸우뚱 넌
이런 건 이제 그만 읽어보자
손짓으로 책을 덮고
이마에 입 맞추고
눈앞의 것 밖에 모르는 어린아이처럼
그냥 천진난만하게 웃어야 해 넌
그러면서
희망이니 열정이니 기쁨이니
하는 쨍한 것들에 대해 한 번 말해봐
증오할 거야 널
너의 행운을 질투할 거야 난
그러다 조금 슬퍼져
모든 게 다 머리 아픈 일이야
울먹이며 네 가슴팍에서 두통을 호소하다
너의 살을 뜯어 먹을 거야
끝난 후엔
역시 플라토닉이
진짜라며
등 돌리고
네 손을 뿌리치고
너에게 나가라 소리칠까 하다
아니야, 안겨 있고 싶어 안아줘 안아주라
난 네 품이 좋아
애원하다 침묵하다
침묵하며
하얗게 맑은 너의 등을 보며
영원한 추락의 꿈을 꿀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