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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타미 Sep 30. 2020

독백 사회

지하철 계단 엎드려 있는 아저씨 

아저씨 사연도 참 많겠지만 동전 몇 개 들고 왔으니

제 얘기 좀 들어보세요

아저씨 엎드려만 있지 말고 고개라도 끄덕여봐요

얼굴 보기도 싫다는 건가 살아는 계시는 거죠

버스를 탔는데 머리 벗겨진 할아버지가 기사 양반하고 부르대요 네 분명 서로 아는 사이는 아니었죠

그러면서 자기가 황달에 걸린 얘기 당뇨에 걸린 얘기 자기가 왜 버스에 탔는지 동네에서 제일 가는 병원은 어디인지 기사는 대꾸도 안 하는 데 계속 얘기 하는 거예요  술 취한 사람처럼 단어를 두세 번씩 말해요 같은 문장도 두 번씩 반복하고요

병원에 간께 의사가 나보고 당뇨라 안 하요 당뇨 당뇨 어휴 쯧 쯧 저짝 병원 의사가 아주 신통한 것이 검사 몇 개 쪼가 한께 바로 당뇨라 안 하요

버스에는 라디오가 틀어져 있었는데 기사는 소리를 줄이지 않았어요 예의상 할 법한 대답도 안 하더라고요 저 할아버지 왜 저럴까 조금의 반응도 없는 사람이랑 왜 얘기하고 싶은 걸까 나이 들면 상대가 보이지도 않는 건가 짜증이 났어요 시끄러운데 조용히 좀 가지 버스 안에 젊은 사람들 모두 불편해하는 것 같았어요 난 저렇게 늙지 말아야지 한껏 속으로 늙는 것에 대해 비난하려는데 할아버지가 갑자기 입을 다물더라고요 버스 안이 조용해졌어요 아저씨 텔레비전은 좀 보시나요 토크쇼 같은 거 보셨어요 이름만 들어도 놀랄 사람들이 나오고 그보다 덜한 사람들이 그 사람 얘기를 들어요 대단치 않은 사람으로 늙으면 누가 얘길 들어주기나 하나요 할아버지도 가족이랑 친구는 있겠죠 근데요 들어주는 건 사랑보다 위에요 가까운 사람과 말은 섞이면 지옥 같다니까요 심각한 얘기라도 해보세요 죄책감, 걱정, 상처에 대한 염려, 자기애, 형체 없는 책임감, 회피하고픈 마음 온갖 것들이 충돌해서 그냥 아수라장이에요 그때쯤이면요 말의 내용보다 말을 하고 들은 사건이 더 중요해지는 거예요 말이란 게요 하거나 안 하거나 둘 중 하나인데 나가지 못한 말은 모양만 요리조리 바꾸면서 죽질 않아요 타박상인지 자상인지 화상인지 그래요

할아버지는요 기사가 자기 말을 무시했던 것에 상처받지 않았을 거예요 알고 있었을지도 모르죠 할아버지가 입을 다문 버스는 참 조용하더라고요 몇 몇 젊은 사람들은 안도하다 울기 시작했어요 모두 외로워 해 전 다음 정류장에서 내려 버렸어요 

근데 아저씨 제 얘기 듣고 계시죠

살아는 계시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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