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
나는 그들이 되지 못하고
나는 내가 되지 못하고
아마
나는 많은 것을 잃고
아무것도 손에 쥐지 못하며
아마
나는 평범한 일상을 보내며
평범한 일상을 얻지 못하며
아마
나는 대학교에서 만난 교수
평생 저예산 영화만 찍으며 거장들을 질투하는
기간제 교수의 모습을 닮아가며
아마
나는 자리를 지키기 위해
원치 않는 자리에 나가며
새벽의 문을 열고
아마
글 좀 쓴다는 말을 듣고
말은 아무런 효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텅 빈 땅을 향해 빈 벽을 향해 맨 허공을 향해
말을 던지고 던지고
아마
꿈이 뭐였냐는 말에 질색을 하며
책이 쌓인 서가를 외면하고
창 너머 보이는 이들의 자화상을 지나치고
아무런 꿈도 없었던 것처럼
아마
나를 살리기 위해 시작했던 몸부림은
아무것도 아닌 무의미한 발악이 되고
오로지 집중할 수 있었던 하나의 일은
나이가 없던 시절 어린 행동으로 남고
아마
나는 오는 삶을 예상하고 준비한다
하지만
감당할 수 있나 삶을
그런 삶을 지탱할 수 있나 나는
발목이 부러져 절뚝거리는 내가 부여잡고 있는 것은
지평선 너머에 오아시스
희미한 연기는 모습을 드러내지만
절뚝거리는 자 손에는 텅 빈 허공만 담겨있을 뿐
아마
나는 걷는 중이다
절뚝거리며 절뚝거리는 삶을 걸어가기 위해
어딘가에 당도하기 위해 꾸준하다는 단 하나의 말을
포기하지 않기 위해
아마
나는 넘어질 것이다
넘어진 자리에 오두막을 짓고
꽃을 심고 개울을 만들 것이다
잊고 잃은 것들은 잊히기 마련이니
쓰린 속 알 수 없게 터를 정비하고
아마
나는 두려워하고 있다
지탱할 수 없는 삶이 오는 것을
신기루가 신기루임을 알았을 때를
생의 의지를 놓고 싶어 질 때를
아마
나는 나아가는 중이다
끝은 누구나 알고 아무도 모른다
절뚝거리는 자의 성실한 걸음 혹은
넘어진 자의 슬프고 따스한 오두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