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 앞에 앉았어야 했다
펜을 들었어야 했고 글을 써야만 했다
대상을 떠올리고 대상을 향해 애정을 퍼부어야 했다
해야 하는 일들이었다
진심 혹은 진심을 위장한 무엇
나를 사랑하는 네가 부러웠다
글을 잃었고
말을 잃었다
너는 내게 무엇을 쓰나
나는 네게 무엇을 써야 하나
말이 없는 사랑을
사랑이라 부를 수 있나
같은 새벽 고뇌하는 밤을
연인의 밤이라 부를 수 있나
이른 새벽 잠들지 못하는 아침
하나의 고민을 붙들며 답을 찾지만
길을 잃고 제자리에 갇혀
결국은 다시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고 만다
질문은 지루해졌고 대답은 진부해졌다
보이지 않게 꺾어진 길이 우리를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