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쓰는 이유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타미 Aug 22. 2020

증조의 장례

증조할머니가 돌아가셨다 와서 찾아봬라
서울에서 부산에서 내려온 자매들은 간만에
부모를 대하는 일로 설전을 벌였고
그러다 웃으며 박장대소를 했다
누가 시골에서 자랐다고 믿겠어
검은 옷으로도 가려지지 않는 도시의 그을림
고향은 그들 내부에나 남아있으려나
추수가 끝난 논밭 사이 간판만 초록 노랑으로 대문짝만 하게 달려
저 색깔이 장례식장에 어울린다고 생각하는 건가
얼굴도 모르고 이름도 모르는 할머니의 이모의 누구의 당숙의 어디의 사촌들
명절보다 큰 자연스런 대가족 모임
자매들의 젊음은 친척들 사이에서 치하받고 
어른의 면은 돈 종이에 적절한 아름다움으로 새겨졌다
자신이 먼저 죽을까 걱정했던
구십육 세 노모의 딸은 어머니의 생존과 죽음의 염려에서 벗어났다
서울에 첫눈이 내리던 날 지명 가물한 시골은 겨울 초입에 서 있었다
지나치게 친절한 상조회사 직원들은
문상객들에게 몇 첩 반상을 내어주고
할머니 저 졸려요 나른한 곳
떠나온 곳에 없던 평화
문득 현실 너머의 평화
딸은 손녀에게 볼 수 있으니 좋다 말하며 이불을 깔아주고
향냄새 풍년처럼 가득한 낮잠
세 세대를 거쳐 노잣돈은 살아있는 자들에게 주어지고
모든 것을 떠났으니 더할 나위 없는 미소는 자식들에게 남겨졌다
뒤척임 없는 잠 손녀는 꿈 없는 꿈에 수평선 같은 안정감을 느끼고
빌딩들 사이 세를 놓고 사는 가슴 두근거림도 사라져
사는 것에 대한 두려움 햇살 아래 눈과 같아 생명의 숨소리 평안하다
손녀는 영원의 반대말에 몰두하다 그저 유한함에 안도했다
아들과 딸의 이름 사위와 며느리의 이름 손의 이름
증손의 이름은 없음에 아쉬워하며 그렇다면 칸이 너무 많았을 거라 납득하며
걸어가는 뒷모습 깨달음을 얻어 가는 승과 같으니
기나긴 안식년으로 달려가는 순례자와 같으니
떠나온 곳 다시 도착해 살아갈 곳에서
결로 모든 것을 이룰 수 있음은 기쁨으로
영속에 서 있지 않아 가벼운 삶의 무게는 감사로
종종 낮잠의 기억을 불러올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싶은 마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