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인으로 살면서 나는 언젠가 꼭 글을 써보고 싶었다. 15년 동안 밤낮으로 수없이 해왔던 비딩 프레젠테이션 비법은 물론이고 광고 기획에 관한 노하우를 모아 후배들에게 도움이 될만한 글을 써보면 어떨까 싶었다. 시기는… 한 200억짜리 PT를 수주한 뒤쯤이 어떨까. 열흘 정도 포상휴가를 받는다면 우아하게 동남아 발리에서 풀빌라를 빌리거나 여의치 않으면 치앙마이 정도의 작은 해변에 방을 잡고 멋지게 펜을 들겠다고, 늘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글을 쓰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 건 삼성의료원 암 병동에서였다. 무릎이 덜덜 떨릴 만큼 두려웠던 나에게 다정하면서도 묘하게 사무적인 말투를 장착한 담당 교수님이 말씀하셨다.
“조직검사 결과 암이군요. 전이 여부에 따라 가슴 양쪽을 다 절제할 수도 있고요. 뼈 스캔 PET-CT 뭐라 뭐라 이것저것 기타 등등 검사한 후에 수술과 치료 방법에 관해 결정해 봅시다.”
교수님은 차트 위 인체 도면 가슴 양쪽에 피 같은 빨간 펜으로 좍좍 굵은 빗금을 가득 그으며 그림과 함께 설명해 주셨다.
내가 암이라니……. 당시 나는 다른 광고대행사로 이직을 앞두고, 새로운 도전에 대한 열정이 불타오르던 때였는데, 차가운 암 병동의 기운이 그 불꽃을 한순간에 꺼뜨리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단순히 살아남는 것이 내 삶의 목적이 된다는 사실이 두려웠다. 하지만 닥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도 그랬듯이 인간에게는 생존 이상의 다른 의미가 필요하다고 하지 않았던가! 나에겐 다른 목적이 필요했다. 그래서 결심했다.
‘그래, 글을 쓰자. 어차피 언젠가는 해야 할 일이었으니 이참에 시작하면 좋잖아!’
우선 개인 노트북이 필요했다. 회사에서 쓰던 노트북은 이미 이별을 예감하고 있었으니까. 진료 후 병원 주차장 차 안에서 남편에게 이야기했다. 암 선고를 받고 상처 입은 환자다운 눈빛과 절망적인 톤 앤 매너로 힘없이 하지만 분명하게 말했다. “여보… 나 집에서 쓸 노트북이 하나 있으면 좋겠어…….(글썽)” 한 3초 정도의 숨 막히는 정적이 흐르더니 세상 다정한 말투로 남편이 말했다. “그래 사야지. 어디로 사러 갈까?” 그 와중에 나는 내 안의 작은 성취감을 느끼며 쇠뿔도 단김에 빼자고, 곧바로 하이마트로 가자 했다. 이제 모든 것이 달라지려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