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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지혜 Dec 04. 2018

암이라고요?

11월 26일     


초음파 검사를 받으러 병원에 갔다. 전부터 몸에서 혹 같은 게 잡혀서 신경이 쓰였는데, 찜찜하니 그냥 확실히 해두려는 차원이었다. 상큼한 하이톤 목소리의 여성 의사 선생님이 검진하며 친절하게 말씀하셨다.

“원래 젊은 여성에게 혹은 흔하게 생겨요~ (방긋) 걱정을 많이들 하시는데, 실제로 이렇게 (스윽스윽) 보다 보면 별것 아닌 게 많… 음? 으으음.” 몇 번의 클릭 후에는 심각한 표정으로 낯빛이 변하셨다. “지금 시간 좀 있어요? 바로 조직검사를 해보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홀딱 벗고 차가운 수술실 위에 누워 있었다. 맨몸에 착착 뿌리는 차가운 소독약도 투박한 수술용 덮개도 모든 게 갑작스러웠다. 수술 준비를 하고 오신 선생님이 나를 위해 기도를 해줘도 괜찮겠냐 물으셨고 “혹시 암일 수도 있을까요?”라는 나의 질문에 “아닐 수도 있어요.”라고 답변하셨다. 국소마취 후 조직검사를 하는 동안 나는 ‘우리 선생님이 참 센스가 없으시네……’라고 생각했다. 물론 의사로서 최악의 상황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은 이해하지만 이렇게나 갑작스럽게 고객을 불안하게 하다니……(이때만 해도 나는 환자가 아닌 고객의 입장이었다.)


11월 28일     


조직검사 결과를 통보받던 날은 아침부터 뭔가가 묘했다. 나는 평소에 얼굴에 뭐가 나는 편이 아닌데 그날은 코밑에 마치 암 덩어리 같은 못생긴 뾰루지가 묘하게 부풀어 있었다. 회사에서 마주치며 묻는 사람마다 “어우 몰라. 암이야 뭐야~ 하하하” 하고 답하며 웃어넘기기도 했다.


오후 5시 예정이었던 병원 약속이 계속 신경 쓰이기는 했지만, 다음 주에 있을 신규 비딩 PT 준비로 종일 정신이 없었다. 차주 PT는 내가 아끼는 팀원의 입봉 PT였다. 오전부터 준비한 마케팅 전략 리뷰도 잘 마쳤고 제작팀의 중간 결과물도 마음에 들어서 오후 3시 무렵에는 상당히 기분이 좋아진 상태였다.


“심, 오늘 5시에 스케줄 어때?

평소 따르는 전 직장 팀장님에게 메시지가 왔다. 팀장님은 수년 전 뇌종양으로 큰 수술을 받았고 지금은 다양한 분야에서 글을 쓰고 강의하고 또 현역으로 활약하며 멋지게 살아가는 분이다. 팀장님의 메시지를 받는 순간 또다시 묘한 기분이 들었다. ‘5시면 내가 조직검사 결과를 통보받는 시간인데….’ 일이 있어 다음에 뵙자 말씀드렸다. 계속 모른 척하고 싶었지만 뭔지 모를 불안함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한 시간 뒤 택시를 타고 병원에 가는 중 묘한 일이 하나 더 있었다. 택시가 선릉역에서 라마다 서울 호텔 사거리로 올라가는 길이었다. 무심결에 선릉공원을 바라보았는데, 새까만 털이 매끈매끈하게 빛나는 정말로 큰 까마귀가 눈에 띄었다. 까마귀는 마치 전속력으로 추락하듯이 빠른 속도로 내 시야를 지나 선릉공원 담벼락 아래로 사라졌다. 한국에도 저런 까마귀가 있나 싶었고 뭔가 낯설고 이질적인 순간이었다.


병원에서 암으로 진단을 받았을 땐, 현실 같지가 않았다. 선생님은 대학병원에 바로 가야 하며 다행히도 내일 오전에 삼성의료원에 빈자리가 생겼으니 예약을 해주겠다고 했다. 마음속에서는 ‘다음 주에 PT도 있는데, 이걸 당장 해야 하는 건가…’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게 슬퍼서 나는 건지 놀라서 나는 건지 모를 갑작스러운 눈물이 흘러내려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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