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나는 5년 넘게 다닌 정든 회사를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떠나려 했던 그 회사에서 나는 감사하게도 내 나이에 받기 힘든 높은 연봉을 받으며 윗분들의 배려와 똘똘하고 착한 팀원들의 활약 속에 뭐하나 부러울 것 없이 일했었다. 심지어 회사 위치도 집에서 걸어서 5분 거리로 가까웠다. 두 아들을 키우는 워킹맘으로서는 회사가 가깝다는 것도 엄청나게 큰 장점이었다. 다만 몇 년 전부터 지속해서 느낀 다양한 캠페인 기회에 대한 갈증이 점점 심해지고 있었고 결국은 회사의 현실적인 지향점과 내가 바라는 길이 다르다는 결론에 이직이라는 힘든 결정을 하기에 이르렀었다.
이직 결정을 회사에 통보한 후에는 언제나 많은 기회를 주시고 아껴주셨던 대표님과 이사님께 정말 하염없이 죄송한 마음이었다. 특히 나는 ‘대표님의 숨겨둔 딸이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대표님의 지지를 많이 받았었는데 내 개인적인 고민의 시간이야 길었겠지만, 대표님의 입장에서 본다면 화가 나는 것이 당연했다. 이후 몇 주간은 잠을 제대로 잘 수가 없었다. 이직이 죄는 아니지만, 개인적인 감정만 놓고 보면 대표님께 이미 나는 대역 죄인이었다.
몇 주간의 설득에도 내가 꿈쩍도 하지 않자 대표님은 결국 이직을 허락해주었다. 그날 대표님 방의 그 무거웠던 공기가 지금도 숨이 턱 막힐 만큼 생생하게 느껴진다. 차마 대표님 눈을 제대로 쳐다볼 수 없었다. 퇴사 컨펌 이후 며칠간 대표님은 내게 말을 걸지도 쳐다보지도 내 자리 옆을 지나가지조차 않으셨다.
암 진단을 받고 회사로 복귀하는 택시 안에서 ‘나 벌 받았나 봐.’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날 아껴주고 믿어주던 많은 이들을 실망하게 했으니까… 그래서 이런 일이 생겼구나 하는 마음이었다. 회사에 복귀해 이사님께 상황을 말씀드리고 팀원들을 불러 간단히 업무 지시를 내린 뒤 일찍 퇴근했다. 그리고 몇 시간 뒤, 대표님에게 전화가 왔다. 오랜만에 직접 듣는 투박하지만, 정이 담긴 익숙한 목소리였다.
“괜찮다. 우리 어머니도 10년 전에 유방암이셨다. 마음가짐이 중요하다.” 내가 “저 벌 받았나 봐요.” 하자 무슨 그런 소리를 하느냐고 타박하시며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셨는데, 순간 눈앞이 흐려지며 아무 말도 들을 수가 없었다. 초음파부터 조직검사, 암 진단을 받고 남편에게 알릴 때조차 단 한 번도 소리 내어 울지 않았는데, 그 순간 눈물이 터져 나와 어린애처럼 소리 내어 울었다. 한참 울고 축 처진 채 거실로 나왔더니 둘째 아들은 내가 사장님에게 혼이 났냐며 그럼 엄마는 이제 해고당한 거냐며 내 등을 쓰다듬어 주었다. 해고라는 말은 어디서 배운 거지…? 기특하긴 했지만, 짱구 만화 좀 그만 보여줘야겠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