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29일
오전 9시까지 삼성의료원에 도착했다. 난 당일 입원하고 검사하고 바로 수술까지 일사천리로 진행되는 줄 알았다. 그만큼 내가 암이라는 병에 대해 잘 몰랐다. 광고 기획자답게 꼼꼼하게 준비해간 입원 가방이 정말 머쓱하게도 고대로 다시 집에 돌아왔다.
알고 보니 수술까지의 과정도 그렇게 순탄한 것이 아니었다. 우선 암이 어느 정도 진행이 되었는지, 림프나 다른 장기나 뼈로 전이된 부분은 없는지 수술 전에 정밀하게 검사를 받아야 했다. 그 검사를 받는 데만도 2주의 대기 시간이 필요했고 그 후로도 수술을 받으려면 3주나 되는 시간을 더 기다려야 했다.
대한민국 사람들은 다 암만 걸리나…? 5주나 버티고 있어야 한다니 너무 답답했다. 그냥 당장 이 암세포를 깔끔하게 떼어버리고 싶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정말 답답했다. 치료가 단순히 한두 달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최소 6개월 혹은 더 긴 시간이 필요할 수 있다는 것을, 수술하고 항암하고 방사선 치료 하는 모든 과정이 그 힘들다는 광고대행사를 다니면서 결코 할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을 그 무렵 알게 되었고 받아들여야만 했다.
회사에는 11월 말일 자로 퇴사를 요청하고 그날 밤 회사에 짐을 챙기러 갔다. 그 길었던 회사생활이 이렇게 단 며칠 만에 빠르게 정리된다는 것이 실감 나지 않았다. 그래도 웃으며 인사하고 싶어 평소처럼 팀원들을 대하고 여느 때와 다름없이 퇴근하듯 그렇게 집으로 돌아왔다.
그날은 밤새 독감에라도 걸린 듯 한숨도 자지 못하고 끙끙 앓았다.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정말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몸이 다 아팠다. 밤새 춥고 덥고를 반복하며 몽롱한 상태가 지속되었다. 피터 파커가 스파이더맨으로 거듭날 때, 에디 브룩이 베놈으로 거듭날 때도 보면 밤새 아프던데. 나는 암 환자로 거듭나기 위해 이렇게 아픈 건가 싶을 만큼 밤새 아팠다.
11월 30일
새벽까지 잠을 설쳐 퉁퉁 부은 얼굴을 하고는 아침에 두 아들을 학교와 유치원에 보냈다. 텅 빈 거실에 그냥 혼자 앉아 있자니 기분이 이상했다. 돌이켜보면 한 번도 이런 모습의 아침이 없던 것 같다. 스물넷 이후로는 언제나 일을 했고, 이직하는 사이에도 혼자만의 시간을 가져본 적이 없었으니까. 녹음실에서 사운드 논의할 때 흔히 요청하던 ‘공간음’이라는 것이 음악 감독님이 볼륨을 키워주신 것마냥 크게 들렸다. 아침 햇살을 받아 커튼 앞에서 아무 목적 없이 부유하는 맹한 먼지가 된 기분이었다. 그래도 마무리는 해야겠다는 생각에 노트북을 켰다. 그리고 퇴직 인사 메일을 보냈다.
안녕하세요. 심지혜입니다.
제가 금일 부로 5년 넘게 정들었던 회사를 떠나게 되었습니다. 한 분 한 분 찾아뵙고 인사드리지 못하고 이렇게 메일로 인사를 대신하는 점 양해 부탁드려요. 그동안 함께해주신 많은 분 덕분에 매일 즐겁게 일하면서 또 많이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하루아침에 갑작스럽게 떠나는 엔딩은 단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는데 참 마음이 아프네요. 그래도 빨리 건강 잘 회복해서 멋진 모습으로 어디선가 또다시 뵐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멀리서도 언제나 이곳에서 만난 모든 분을 응원하겠습니다.
건강하세요~ 늘 감사했습니다! :)
마지막 웃는 이모티콘을 꾹꾹 눌러 담으며 펑펑 울었다. 남편도 아들도 팀원도 친구도 곁에 없이 오롯이 혼자 있는 시간이 되니 이제 울어도 괜찮다고 허락받은 것처럼 눈물이 쉼 없이 흘렀다. 뜨거운 물을 벌컥벌컥 들이켠 듯 속이 뜨겁고 아팠다. 언제가 될지 모를 그 막연한 치료의 종착점까지 나는 난생처음 맞이하는 커리어의 강제 종료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