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폭은 달라도 같은 곳을 향해 뛴다

함께 크는 매일 11: 고독한 질주가 다정한 동행으로 바뀌던 순간

by 낙천지명

“그럼 우리도 같이 나가볼까? 아이랑 나는 5km 코스로.”

그 한마디가 가슴에 오랫동안 머물렀다.


건강을 위해 시작했던 조깅은 내 삶에 작은 균열을 냈다.

넉 달 만에 10km 마라톤을 완주하자,

내 안에는 더 먼 곳을 향한 갈증이 생겼다.

다음 목표는 하프 마라톤이었다.

조심스럽게 아내에게 계획을 전했을 때,

아내의 눈동자에는 걱정이 먼저 스쳤다.

무리하지 말라는 당부 끝에 아내는 의외의 말을 보탰던 것이다.


나만의 건강을 위해 혼자 시작했던 일이,

어느덧 우리 가족 모두의 일이 되었다.

혼자 달리던 적막한 길 위로 아내의 숨소리와 아이의 웃음소리가 덧칠해지는 순간이었다.


두 계절을 지나, 다시 마주한 출발선

그날 이후 우리는 각자의 자리에서 보이지 않는 레이스를 시작했다.

나는 하프 코스를 위해 거리를 늘리고 호흡의 리듬을 가다듬었다.

아내는 걷기와 달리기를 반복했고,

여덟 살 아이도 제법 진지한 얼굴로 짧은 거리를 꾸준히 걸었다.

우리의 목표 지점은 달랐지만,

우리가 바라보는 날짜는 같았다.

가을의 단풍이 지고 겨울의 찬 바람이 불어올 때도

우리는 서로의 속도를 존중하며 그날을 기다렸다.

마침내 봄볕이 내리쬐는 마라톤 당일,

우리는 각자의 출발선에 섰다.

아내와 아이는 5km를,

나는 생애 첫 하프 코스를 향해 첫발을 내디뎠다.


마음이 지칠 때 들려온 다정한 발소리

달리는 동안 고비는 수시로 찾아왔다.

15km를 넘어설 무렵,

몸보다 마음이 먼저 비명을 질렀다.

다리는 천근만근 무거워졌고 숨은 턱 끝까지 차올랐다.

그때마다 나는 같은 길,

어딘가에서 달리고 있을 아내와 아이를 떠올렸다.

‘이미 도착해서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아니면 아직 땀을 흘리며 걷고 있을까.’

가족이라는 존재는 나를 다시 움직이게 하는 보이지 않는 동력이었다.

혼자였다면 적당한 핑계를 대고 멈췄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같은 길 위에 사랑하는 이들이 있다는 감각이 나를 한 걸음 더 앞으로 밀어냈다.

결국 우리 세 사람은 모두 완주 메달을 목에 걸었다.

완주는 기록의 숫자가 아니라,

서로를 믿고 끝까지 간 마음의 크기였다.


내 인생 최고의 선택이 바뀌다

예전의 나는 습관처럼 말하곤 했다.

내 인생 최고의 선택은 열아홉 어린 나이에 군대에 자원 입대했던 것이라고.

그곳에서 배운 인내와 규율이 내 삶의 뼈대를 만들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흔을 넘기고 아내와 아이를 만나 '가족'이라는 이름을 얻으면서 그 확신은 서서히 자리를 옮겼다.

사실 나는 가족이 두려웠던 사람이었다.

부모님의 고단했던 삶을 곁에서 지켜보며,

누군가의 생을 책임진다는 것이 얼마나 무겁고 아픈 일인지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직접 살아보니 알겠다.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일,

서로의 서툰 발걸음을 다독이며 버티는 시간이 주는 단단한 평온을 말이다.

이제 나는 주저 없이 말한다.

내 인생 최고의 선택은 바로 '가족'이었다고.


더 멀리가 아니라, 함께 가기 위하여

미셸 오바마는 말했다.

“가족은 우리가 돌아갈 수 있는 가장 안전한 곳이다.”라고.

나는 이제 그 말에 나만의 해석을 덧붙인다.

가족은 도달해야 할 결과가 아니라,

매일매일 함께 달리는 과정 그 자체라고 말이다.

오늘도 나는 다시 운동화 끈을 묶는다.

더 빨리, 더 멀리 가기 위해서가 아니다.

사랑하는 이들과 같은 시간을 나누고,

같은 방향을 향해 걷기 위해서다.

그날의 마라톤처럼 우리의 보폭은 제각각이고 속도도 다르지만,

우리는 서로의 곁을 지키며 조용히 자라고 있다.

혼자 달리던 길에서 함께 걷는 길로 접어든 지금,

비로소 나의 삶은 완성되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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