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군과 신념 사이의 정답 없는 질문

함께 크는 매일 12: 이사, 단단한 마음을 품고 건너는 다리

by 낙천지명

아이가 일곱 살이 되던 해의 봄, 익숙했던 어린이집 풍경에 낯선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재잘거리던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줄어들고, 등원길에 마주치던 익숙한 얼굴들이 하나둘 사라졌다.

아이도 그 고요한 변화를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는 듯했다.

이유는 분명했다.

다가올 초등학교 입학을 앞둔 부모들의 분주한 준비였다.

아이들은 저마다 동네 친구를 미리 사귀고 새로운 규칙에 적응하기 위해 집 근처 유치원으로 흩어지고 있었다.

그 텅 빈 공간을 바라보며 나와 아내 역시 무거운 침묵에 빠져들었다.

우리에게도 피할 수 없는 선택의 시간이 도래한 것이다.


전직 교사라는 이름의 무거운 족쇄

우리에겐 유치원이 아닌, 입학할 초등학교에 대한 선택의 고민이었다.

그것은 거주지를 옮겨 삶의 터전을 통째로 바꾸어야 하는 문제였다.

우리 부부는 둘 다 교육 현장을 경험했던 이들이었다.

아내는 초등교사로서 또래 집단이 아이의 사회성에 미치는 지대한 영향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고, 나 역시 이상과 현실의 간극을 뼈저리게 느껴본 터였다.

그래서 우리는 더 쉽게 결정할 수 없었다.

'좋은 교육 환경'이라는 그럴듯한 명분 뒤에, 혹시 부모의 욕심과 은근한 기대를 숨겨두고 있는 것은 아닐까 끊임없이 자문했다.

우리 사회에서 '학군'이라는 두 글자가 갖는 맹목적인 무게를 잘 알고 있었기에, 망설임의 시간은 한없이 길어졌다.

그 어떤 교육학 이론도 부모라는 이름의 불안을 잠재워주지는 못했다.


삶이 등을 떠밀어 만들어낸 우연한 길

결국 정답은 교육관이나 육아 이론이 아닌, 삶의 현실 속에서 찾아왔다.

가족의 상황이 먼저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집안 사정으로 인해 아내가 곁에서 처가 식구들을 돌보아야 할 일이 생겼고, 자연스럽게 우리가 오랫동안 고민하던 그 지역이 새로운 선택지로 떠올랐다.

흐르는 물줄기를 따라가듯, 우리는 그 흐름에 몸을 맡겼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나는 남몰래 깊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 결정이 오롯이 나의 교육적 야심이나 선택에 의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 때문이었다.

"내 교육관과 어긋나는 극성스러운 선택은 아닐까" 하는 스스로를 향한 날 선 질문에서 잠시나마 도망칠 수 있는 비상구가 생긴 셈이었다.


아이의 시간은 그렇게 조용히 이어졌다

초등학교 입학을 단 몇 달 앞두고 낯선 동네에서의 새로운 생활이 시작되었다.

아이는 입학 전주까지 기존 어린이집을 단 하루도 빠지지 않고 다녔고, 눈물 대신 조용한 미소로 그 시절을 졸업했다.

그리고 전혀 새로운 환경 속으로 들어갔다.

우리의 선택지 중의 하나로 가긴 했지만, 또 다른 고민.

이 학교 학생들은 이미 영어 유치원이나 주변 학원에서 선행을 많이들 한다는데,

우리 아이는 어린이집 외엔 전혀 사교육을 하지 않았기에...

하지만 부모의 걱정과는 달리 아이는 초등학교에서도 잘 적응해 나갔다.

다음 계절로 넘어가는 아이의 뒷모습을 지켜보며 나는 뒤늦게 깨달았다.

부모의 치열한 고민과 선택이 아이 삶의 전부를 결정짓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말이다.

부모가 완벽한 판을 짜주지 않아도, 아이는 이미 자신만의 호흡과 방식으로 자양분을 빨아들이며 묵묵히 자라고 있었다.


우리가 진짜로 옮겨가야 했던 자리

작가 알랭 드 보통은 말했다.

“우리는 공간을 바꾸며, 삶을 다시 이해한다.”라고.

이번 이사를 통해 나는 환경이 삶을 흔들 수는 있어도, 아이라는 존재의 본질을 바꾸지는 못한다는 것을 배웠다.

아이를 위해 환경을 바꾼다고 믿었지만, 사실은 우리 가족 모두가 한 단계 성장하기 위해 거쳐야 했던 필연적인 변화였다.

이제 나는 예전만큼 불안해하지 않는다.

세상에 완벽한 선택이란 없으며, 부모가 해줄 수 있는 것은 그저 같은 방향을 바라보며 곁을 지켜주는 것뿐임을 알기 때문이다.

그날의 이사는 하나의 단순한 사건이 아니라, 우리 가족이 손을 잡고 건넌 작은 다리였다.

그리고 우리는 지금도 그 다정하고 단단한 다리를 함께 건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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