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랑자의 변명
혼자 가렵니다
나보다 키 큰 사람 올려다보기 싫답니다
나보다 키 작은 사람 내려다보기 싫답니다
나하고 키 같은 사람하고 싸우기 싫답니다
혼자 가렵니다
巨人을 닮은 나무 옆에 혼자 있어도 주눅 들지 않소
혼자 나무 밑에서 낮잠을 즐기리이다
길가의 앙바틈한 들꽃 꺾어 버리지 않고
혼자 그 꽃향기에 취하오리다
호랑이를 닮은 짐승 나 혼자 만나도 두렵지 않소
짐승의 저녁거리가 되어도 좋겠소
열심히 먹이를 나르는 개미 발로 밟지 않으며
그 부지런함에 탄복하오리다
혼자 가렵니다
에베레스트를 닮은 山 앞에서 나는 혼자 당당하다오
오르다 못 오르면 山 중턱에 묻혀 山과 하나가 되리다
아담하게 솟은 뒷동산에 단숨에 올라
동산과 친구가 되어 이야기를 나누리이다
태평양을 닮은 바다 나는 거침없이 뛰어들겠소
가다 못 가면 지나가던 고래의 밥이 되리라
졸졸 흐르는 시내를 한걸음에 뛰어 건너지 않고
흐르는 소리에 맞추어 노래를 부르오리다
혼자 가렵니다
나보다 키 크지 않고
나보다 키 작지 않고
나하고 키 같지 않은
저 人間하고도 같이 가지 않겠소
그런데 저 사람은 누구인지
나보다 키 큰 사람하고도
나보다 키 작은 사람하고도
나하고 키 같은 사람하고도
같이 가라고 하네요
그래도 혼자 가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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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보다 잘 난 사람에게는 굽실거리고 자기보다 못 난 사람은 무시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라고 생각된다. 예수님은 원수까지 사랑하라 하셨으니, 원수도 아닌 사람들, 나보다 잘 사는 것이 나보다 못 사는 것이 그들의 잘못이 아님에도 사랑하지 못하는 것은 기독교의 교리에 의하면 죄가 확실하다. 그래서 죄를 피하기 위해 믿는 사람은 산 속에 홀로 은둔하는 사람이 생겼는데, 외로움을 견디기 힘들었는지 이런 사람들이 모여 수도원을 만들었다. 수도원의 기원에 대한 지나치게 단순하고 주관적인 의견이지만, 적어도 부분적인 설명은 된다. 그러나 죄를 피하기 위해 사람들이 모여 있다 보니, 같은 죄를 범하는 것은 어쩔 수 없을 일이라, 수도원 내의 파벌과 갈등은 수도원 밖에서도 보일 정도다.
방랑자가 죄를 피하기 위해서 홀로 걷는 것은 아니라, 그냥 사람이 싫어서 인데, 이 것도 죄라면 죄라고 말할 수 있지만, 여러 사람 모여서 죄 짓는 것보다, 홀로 죄 짓은 것이 조금이나마 죄가 가볍지 않을까 하는 순진한 생각에 방랑자는 오늘도 걷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