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은
내가 방랑을 시작하기 전 부터
나를 눈여겨 보고 있었지
발걸음을 옮기자
발 뒤꿈치에 바짝 붙어 따라왔으니
처음엔 무좀같이 걸기적거렸지만
방랑이 시지프스의 운명임을 알았을 때
절망은 외톨이 방랑자의 유일한 친구가 되었다
밤하늘의 총총한 별을 보고 詩를 읊었을 때
절망은 그 별들에게 갈 수 없음을 알려 주었고
한 낮의 뙤약볕에 허덕이던 나
소나기 맞고 기뻐 할 때
절망은 태양은 결코 지지 않는다는 말도 했고
한 겨울의 추위에 얼어붙은 나
따스한 양지 밭에서 졸고 있을 때
절망은 봄은 아직 멀었다고 가르쳐 주었다
길가의 아름다운 꽃 한 송이 보고
방랑을 멈추려 할 때
절망은 시든 꽃 한 뭉치를 내게 던져주었지
새벽 숲 속의 새소리에 깨어
그 재잘거림을 듣고 미소 짓고 있을 때
절망도 새 소리를 듣고 있었나...
아! 내 곁을 떠나지 않았던 내 친구 절망이여!
순간의 기쁨에서 나를 건졌고,
헛된 희망의 무기력에서 구해주었던 절망이여
절망도 일생의 방랑에 지쳐
쉴 곳을 찾는 헤맬 때
절망에게 돌무덤을 만들어 주고
나 그 옆에
희망이라는 두 글자를 안고
生의 마감을 기다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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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고문’이라는 말이 있다. 이는 아무리 힘든 상황에서도 희망을 가져야 한다는 말을 믿고 희망을 놓지 않는 것이 고문같이 견디기 힘든 일이라는 뜻이리라. 특히 헛된 희망이라면 그 고통은 절망보다 더 하지 않을까? 다행이도, 혼자 방랑하는 시인은 목표도 행선지도 없으니 희망이라는 말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 희망이 없다면 절망도 없을까? 그럴 수도 있지만, 종종 외로움을 느끼는 시인은 방랑을 시작하기 전 숨겨놓았던 절망을 살며시 꺼내어 친구로 삼았다. 그러나 절망도 방랑에 지쳐 허덕일 때 시인도 희망을 한 번 만져보고 싶을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