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겁의 세월을 걷다 보니
나도 모르는 길에 서서
두리번거리고
내가 어디에서 길을 떠났는지
알 길도 없어라
어는 곳으로 갈지 알기는 했는지
지금 서 있는 이 길은
어디로 가는 길인지 알기는 하는지
차라리
아무 곳에도 이르지 않는 길이라면
또 다시 억겁의 세월을 걸어
이 곳에 돌아와
회색 빛 하늘을 찢고 내려오는
거대한 날개를 보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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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은 혼자 길을 꽤 많은 시간 걷다 보니, 인간은 ‘길’이라는 개념에 너무 중요한 의미를 두고 있는 것 같다는 철학적인 사유도 해 본다. 장자도 자신의 사상에 ‘도’라는 이름을 붙이고 ‘길 도’(道)자를 썼다. 그러나 삶에 ‘길’이란 과연 있는 것일까? 삶의 마지막 순간에 뒤를 돌아봤을 때, 걸어온 길이 보일까 아니면 길이라고 걸어온 길이 정글이었음을, 길을 따라온 것이 아니라 길을 만들며 왔다는 것을 깨달으면 행복한 죽음이 될까, 시인이 만든 길이 다른 사람에게 보일까 아니면 그들도 길을 만들며 와야 하나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애초에 길이라는 것은 없고 그 자리에서 뱅뱅 도는 것이 인생이 아닌가 절망적인 결론에 이를 수 있지만, 내려오는 날개를 보면서 시인은 희망을 가져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