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묘지를 즐겨 찾고 싶었던 詩人
Fort Pulaski National Monument에
하와를 유혹한 뱀같이 꾸불거리는
Cockspur Island Lighthouse 산책길을
유유자적 걷다가
시커먼 등대가 칠흑 같은 긴 머리를
늘어뜨린 처녀 귀신같이 서서
공포영화를 좋아하는 詩人을 환영한다
이 근처에 공동묘지가 있다면 그림이 완성되겠다
이때 발 밑에서 나는 빠드득빠드득 소리
역시 사바나는 詩人을 실망시키지 않는다
껍데기만 남기고 生을 마친 굴들의 묘지
무덤도 없고 묘비도 없고 그냥 쌓여있는
삶의 터전인 바닷물이 쓸려가고
낯선 공기의 입자들이 굴들을 에워싸자
굴들의 꿈과 희망은 껍데기에 박제가 되어 버리고
이렇게 巨大한 공동묘지가 만들어지고
등대는 묘지 지기로 자리매김하였으니
詩人이 오기를 얼마나 기다렸을까
미물인 굴이 무슨 꿈과 희망이 있나요?
아무리 詩人이라도 과장이 심하시네요
사바나에 공동묘지는 앞으로 생기지 않겠지요
사바나의 꿈과 희망은 굴같이 묻히지 않고
예수를 믿는 사람들 같이 永生을 얻기를
바라는 詩人의 마음이지 과장이 아니겠지요
아! 下등 동물인 굴이
무슨 생각을 하고 살았는지
어떤 삶의 애환이 있었는지
高등 동물인 人間이 어찌 알겠소
애틀랜타가 사바나를 모르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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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 영화를 좋아하는 시인은 미물인 굴 껍데기가 쌓여 있는 것을 보고, 영화에서 많이 본 사람의 시체가 쌓여 있는 장면을 연상한다. 이 경우에 ‘공동묘지’라는 말은 사치스러운 단어인데, 시인은 하등동물인 굴에게 극도의 연민을 드러내며 이 말을 썼다. 벌레 하나도 잘 못 죽이는 시인의 여린 마음을 나타내고 있는데, 왜 공포영화는 즐기는지는 미스터리다. 더군다나 버림받은 시커먼 등대가 바로 옆에 있으니, 시인이 처녀귀신을 불러오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굴에 대한 연민과 굴을 생각하며 군침을 삼키는 행위는 어떤 연관이 있을까 시인은 알기를 포기했다. 인생은 아는 것이 아니고 그냥 사는 것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