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한 줄, 하루 한 대사.
"그는 언제든 떠날 수 있었지만 그러려고 하지 않았어.
마음만 먹으면 진실을 알 수 있었는데도 시도조차 하지 않았지."
지금 사는 세상이 현실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다. 파란약을 먹어야 할지 빨간약을 먹어야 할지 고민해야 한다면, 난 무조건 파란약을 삼킬 것이다. 왜? 무서우니까. 지금 세상이 아무리 고통스럽고 힘들어도 다른 세상이 더 따뜻하고 안전할 것이란 보장이 없으니까. 그런데 '혼돈과 고통'이 보장된 진실이라고? 과연 영화 '메트릭스' 속 네오처럼 빨간약을 선택할 인물이 얼마나 될까?
2020년에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된 영화 '디스커버리'에는 한 순간에 4백만 명이 자살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이유는 한 물리학자가 사후 세계가 실제로 존재한다는 것을 밝혔기 때문이다. 이상한 건 영화에는 사후 세계가 현실 세계보다 더 좋을 거라는 증거가 하나도 안 나온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목숨을 끊는 사람이 많은 이유는 지금 내가 사는 세상이 너무 괴롭기 때문이었을 거다.
디스커버리에서 자살을 택한 사람들도 트루먼 쇼 속 트루먼처럼 '상실에 대한 아픔'을 가지고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상실이 크면 죽을 만큼 괴롭다. 빨간약을 먹을 수도 있고 거친 바다를 건너 계단을 걸어 올라갈 수 있는 용기도 생길 것 것 같다. 어디선가 들었다.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사람은 '더 잃을 것 없는 중년 아저씨'라고. 다시 이야기해서 모든 걸 상실한 아저씨라는 것이다. 중년이라면 그때까지 잃은 것보다 가졌던 것이 많았을 테니까.
지금 주변에 삶을 괴로워하는 사람이 많다. 가까운 사람이 괴로워하면 나도 함께 괴롭다. 뭔가 도움을 받고 도움을 주고 싶지만, 쉽지 않다. 아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냥 견디고 현재에 최선을 다 할 수밖에.
미우라 켄타로가 그린 명작 '베르세르크'에는 이런 대사가 나온다. "도망쳐서 도착한 곳에, 낙원이란 있을 수 없는 거야." 트루먼이 문을 열고 나간 곳에는 낙원이 있었을까?
"봐라. 내 주변의 어둠을.
여기가 네가 도착한 곳, 여기가 네 낙원이다.
도망쳐서 도착한 곳에 낙원이란 있을 수 없는 거야.
도착한 곳, 그곳에 있는 건 역시 전장뿐이다.
돌아가. 여긴 나의 전장이다.
넌 너의 전장으로 가라."
- 베르세르크 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