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동을 믿다

바이올린 구매기

by 주세연

짧은 획 하나로 이루어진 <이우환>작가의 작품을 처음 접하게 된 사람은 대부분 "무슨 점 하나의 가격이 이렇게 비싼가?"라고 의문을 가지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가 구매하는 것은 그가 점을 찍는 단 몇 분의 순간적 작업물이 아닌 수십년동안 다듬어져온 그 작가의 철학과 시행착오적 경험을 사는 것이다.

그의 인생이 그 충동적인 점하나에 모두 담겨있다.

그래서 작품을 보고 있노라면 매번 연속적인 의식의 확장을 경험하게 된다.

이렇게 충동은 모든 논리가 만들어낸 결과물일 것이다.


약 4개월 전이었다. 의식이 모든 것을 지배하던 나의 취미생활-아직은 기초 단계라 원론적인것에 초점을 맞추는 중-에서 충동의 순간이 일어났다. 악기를 업그레이드하는 과정에서 생긴 일이다. 나름 지금 시기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고 현재 나의 생활은 바이올린 생각으로 가득하다. 취미생활을 바이올린으로 결정한 것도 다소 충동적이고 시기 또한 전혀 여유를 생각하지 못해 벌려두고 수습 중인 상황이다.

연습용 바이올린으로 레슨을 시작하고 하이포지션 부분에서 약간의 한계가 느껴지던 중 아마추어 오케스트라의 공연일정이 정해지면서 연주용 바이올린으로 교체를 결정하게 되었다. 하지만 핑계일 뿐 지금보다 좀 더 이쁜 나만의 바이올린을 갖고 싶었던 것 같다. 취미는 늘 장비병을 동반하는게 이치가 아닌가.


나름 고가의 제품을 선택해야하는 부담과 후회없는 선택 과정, 실수의 위험성 그리고 새 악기에 대한 기대감으로 나의 뇌는 바이올린만 주목했다. 주변의 조언도 들어봤지만 내 마음을 잡을 만한 정답은 없었다. 바이올린의 기본이라 생각한 목재의 국가별 특성을 찾고 접합목과 통판의 제작과 무늬, 제작자의 명성, 공방의 이력, 브랜드의 가치, 건조기간에 따른 가격 등 찾을 수 있는 모든 정보를 취했다. 이 치밀한 작업-자가용도 이렇게는 안 샀다- 끝에 나의 현 상황에 맞도록 십여개의 후보 중 1순위부터 4순위까지 특정했지만, 마지막 4순위는 디자인이 마음에 들 뿐 이렇다할만한 사양도 가격납득도 어려워 삭제했고 잊혀졌다. 이제 이 3순위 안에서 더욱 정교한 싸움이 시작됐다. 언제나 그렇듯 비용이 최종 결정의 가장 큰 문제인데 2순위는 감당 가능할 수준 1순위는 다소 무리한 가격, 3순위는 좋은 가격에 사양좋은 무난한 절약템이다. 무엇이든 일단 돈이 끼어들 단계가 되면 뇌는 더 활성화된다. 1~2년 후의 상황까지 시뮬레이션해보니 3순위를 가장 빠르게 탈락시켰다. 똑똑한 소비가 가능한 모델이었지만, 멜랑꼴리한 정이 가지 않았던것 같다.


이제 후보는 단 두 개, 더 신중을 가해야한다. 그래서 내게 여유를 줬다. 1주에서 2주 정도 여유가 있었고 그래도 결정을 못내린다면 한두달을 더 보내고 사더라도 후회하지 않는 결정을 하고 싶었다. 악기사에서도 천천히 결정하고 알려 달라 하셨다. 처음 상황과 현재 2:1 상황을 비교해보니 이제 둘 중 어떤것도 후회 없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마음을 놓고 오랜만에 바이올린 생각에서 벗어나 긴 수면을 취했다.


그런데 바로 다음날, 악기사 문을 열자마자 바이올린 구매 결제를 진행하고 있었다. 더이상 고민의 가치도 없다고 생각했다. 결국 내가 구매한 바이올린은 1순위도 2순위도 아닌 목록에 조차 두지 않았던 4순위의 바이올린이었다. 이유는 모른다. 그냥 예뻤다. 내 마음이 갔다.

그동안 내가 그렇게 열심히 고민하고 자료를 찾고 공부를 한건, 어쩌면 디자인만 보고 4순위를 마음에 둔 나에게 무의식적으로 설득하고 있던 시간이었던것 같다. 다른 모델들이 가진 합당한 이유와 압도적인 스펙을 스스로에게 주입시키며, "그래도 이거 살거야? 너 또 실수 할거야? 후회할걸?"하고 끊임없이 되묻고 있었던것 같았다.

하지만 이 치밀했던 고민의 시간이 쓸모없게 되더라도, 훗날 후회의 가능성을 두고서라도, 사도 될 만하다는 생각이 나의 무의식에서 작용했던것 같다.


내 마음을 이끌었다는 건 내 뇌가 허락했다는 것이다.

살아오면서 내가 했던 수많은 선택과 경험을 통해 스스로 결과를 예상하는 것에 끌리게 되는 것이다.

내 마음이 가는 곳으로 행했다면, 혹시 다가오고 있을지 모를 후회도 기쁘게 받아들일 것이다.


그래서 난 나의 무의식적이고 대범한 충동을 지지한다.

내 의식의 결과물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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