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사이마라를 만나러 가는 길
마사이마라 사파리 투어를 위해 아침부터 분주했다.
기본 짐은 호텔에 맡기고 2박 3일간의 간단한 준비물만 꾸려 움직인다.
마사이마라 국립공원까지 가는 길은 가깝지 않았기에 근처의 마트에서 가는 동안 필요한 간식이나 식수를 준비하기로 하였다.
새로운 곳에서의 마트는 마트대로 재래시장은 재래시장대로 돌아보는 재미가 있다.
마트는 우리나라와 비교하면서 보는 즐거움, 우리나라에 있는 물건들이 그곳에 있다는 것에 대한 반가움, 전혀 색다른 것들에 대한 호기심이 뒤섞여 마트를 돌아보는 것은 상당히 흥미로우며 재래시장은 재래시장 나름대로 그 동네마다 각각의 특색이 있다.
케냐에서 처음 접한 재래시장은 고기 코너, 생선코너, 야채 코너로 형성되어있는데 건물을 나가자마자 형성되어있는 꽃 판매상들이 보인다. 우리는 통에 꽃을 꽂아놓고 포장해서 파는데 이곳은 바닥에 펼쳐놓고 판매를 하고 있는 모습에 다름을 느낀다.
마사이마라 캠프까지 가는 도중 차창밖으로 보이는 풍경들이 새롭다.
차가 지날 때마다 흙먼지가 날리는 도로 옆 가림막에 걸쳐놓은 청바지들은 가지런히 접혀있어 판매하는 것인지, 빨래를 널어놓은 것인지 구분이 되질 않는다.
도로 옆 흙바닥에 야채들을 수북이 쌓아놓고 파는 재래시장의 모습들도 이색적이기만 하다.
차가 지날 때마다 흙먼지가 날리는데도 그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오는 손님을 기다린다.
마사이 마라는 '마사이 부족이 살고 있는 곳'을 지칭하는 것으로 남쪽의 세렝게티와 이어지는 케냐의 국립공원이다. 7~8월이 되면 세렝게티에 있던 대규모 누떼가 '마라'강을 건너 마사이마라로 건너온다.
이번 사파리 투어는 마사이마라와 세렝게티의 경계인 마라강도 가게 되어 마라강을 건너는 누떼를 건너는 풍경을 볼 수 있길 살포시 기대해보았다.
캠프에는 오후에 도착했다. 아직 노을이 질 시간은 아니라 캠프에만 시간을 보내는 아쉬움을 느꼈는지 드라이버가 사파리 맛보기를 제안하였고, 난 당연히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
사파리 차량은 차 지붕을 위로 올려 관광객의 욕구를 만족시키고 안전하였으며, 드라이버들은 어느 곳에 어느 동물이 있는지를 서로 무전하면서 협력하면서 사파리를 진행하였다.
드넓은 초원, 끝도 보이지 않고 이정표 하나 없는 곳에서 드라이버들은 그들만의 언어와 표현으로 원하는 그곳을 찾아가고 관광객들이 원하는 동물을 찾아줬다면서 으스대기도 하였다.
일몰 전까지의 사파리 투어는 2시간 정도 진행되었다.
넓은 줄은 예상했지만 이렇게 끝이 보이지 않을 줄은 몰랐고 맛보기라고 우습게 볼게 아니듯 처음 보는 마사이마라의 강렬함은 뒤통수를 가격했다. 가도 가도 끝이 보이지 않는 초원, 그 안에 풀을 뜯고 있는 누와 얼룩말들은 평화롭게만 보인다.
그 사이 저 멀리에서 기린이 꼿꼿이 세운 고개와 살랑거리는 꼬리, 우아한 걸음걸이로 지나가고 있는 것이 보였다. 고개를 돌려보면 다른 쪽에는 꼬리를 물고 가는 코끼리 가족도 보이고... 동물의 왕국에서나 볼 수 있는 모습들이 현재 내 눈앞에 펼쳐지고 있음에 신이 나서 카메라의 셔터를 작동시켰다.
사파리 차량은 동물들이 놀랄까 봐 어느 정도의 거리를 두면서 진행한다. 공생을 위한 작은 배려에 우리는 동물에 대한 배려를 너무 멀리하고 살고 있지는 않은가 뒤돌아보게 한다.
난 지금 믿기지 않지만,
동물의 왕국에서나 보던
풍경을 보고 있다.
해가 질 무렵 우리는 캠프에 돌아왔다.
저녁을 먹은 후 일행 중 한 명이 양다리 하나를 사 왔다며 마사이에게 구워달라고 청했고 마사이는 부족의 전통방식으로 모닥불에 양다리를 굽기 시작했다.
고기를 끼운 막대기는 모닥불 옆에 비스듬히 세워놓고 고기의 익은 부분은 베어가면서 구워낸다.
캠프의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그들은 제각기 각자의 언어로 모닥불에 모여서 고기가 구워지는 걸 바라보고 있었다. 웃는 사람들과 모닥불을 바라보는 사람들, 열심히 대화하는 사람들.. 무슨 말들이 오가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들의 표정에는 심각함이 보이지 않았다. 그중에 구워지는 고기를 바라보면서 맥주 한잔을 들이키며 행복해하는 내가 있었다.
고기는 구워지는 시간이 길었다. 함께하자고 말하기 전에 그들은 숙소로 하나둘씩 들어가기 시작했고, 고기가 구워졌을 때는 우리 일행만 남았다. 양고기는 특유의 냄새가 싫어서 잘 먹지 않았는데 내 손에 있는 양고기 조각은 그런 냄새 없고 맛있어서 계속 먹게 된다.
별과 모닥불이 있고
고기와 맥주 그리고 현재를 즐기는
아프리카의 이틀째 밤이다.
마사이마라 캠프 2일째
해도 뜨지 않은 깜깜한 새벽부터 나갈 준비를 한다.
새벽에는 먹이를 사냥하기 위해 맹수들이 많이 나온다는 소리에 새벽 사파리를 하기 위해서다.
멋진 일출까지 나오면 정말 좋겠다!!
꿈은 정말 꿈일 뿐일까?
멋진 일출은 나타나지도 않았고 맹수들은 사냥을 마치고 돌아갔는지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다.
동틀무렵의 초원은 어제와 다른 모습을 보여줬지만, 아쉬운 마음은 거둬들일 수 없었다.
새벽인데도 누워 자는 동물들이 없어 궁금해진 나는 드라이버에게 안 되는 언어로 물어봤다.
'누들은 맹수의 공격 때문에 서서 잠을 잔다'라고 한다.
약육강식의 세계, 아프리카 초원에서 살아남기 위한 최소한의 생존전략인 것이다.
사자가 나타났다는 무전을 듣고 도착한 곳에는 나무 한그루를 두고 사파리 차량들이 어제와 마찬가지로 일정한 간격을 두고 빙 둘러 있었다. 모든 사람들은 차 지붕 밑으로 조용히 사진기를 들이대고 그 순간을 지켜보고 있었다.
나무 밑에는 사냥한 누를 암사자가 숨통을 서로 교대로 물고 있었고, 새끼 사자들은 그 옆에서 장난을 치고 있었지만, 수사자는 보이지 않았다. 목을 물리고 있던 누가 도망치려고 한차례 일어나다 비틀거리면서 쓰러졌고 암사자는 이를 놓칠세라 다시 목을 물어 숨통을 조였다. 누가 다시 도망칠 것을 대비하듯 이번에는 두 마리의 사자가 함께 했다.
여행을 다니면서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었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성능 좋은 카메라가 부러웠다.
생동감 있게 표현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지만 실제로 보고 있다는 것으로만 위안을 삼았다.
사파리 차량들은 서로 무전을 하면서 맹수가 나타나면 모두 모여든다. 그렇다고 장시간 오래 있지 않는다. 서로 밀치거나 새치기하지도 않는다. 다음 차량을 위해 자리를 양보하면서 서로 함께 살아간다.
내가 보고 싶은 만큼
상대도 보고 싶을 거야~
여전히 누와 얼룩말은 끝도 보이지 않는 초원에서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고 새벽에 사냥을 마친 사자들은 바위 위에서 널브러져 낮잠을 자고 있다. 한가롭기 그지없는 풍경들 사이 암사자 대여섯 마리가 줄을 지어 이동하고 있어 물어보니 사냥을 하기 위해 이동하는 거라 한다.
치타를 보고 싶다고 했더니 드라이버가 무전을 하면서 치타의 위치를 파악하기 시작했다. 서로 오가는 무전 속에 치타의 위치를 알아냈다면서 거의 한 시간을 달려간 곳에서 드라이버는 팔을 뻗어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치타'라고 작은 소리로 외친다. 정말 그곳에 치타가 나무 그늘 밑에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박수를 치면서 좋아라 하는 우리에게 드라이버는 손가락을 입에 가져다 대고 조용히 하라면서 말을 이어간다. 치타는 예민해서 차량 소리 나 큰소리가 들리면 피한다고 그래서 이렇게 차를 멀리 댈 수밖에 없다고..
무서워서 조용히 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의 영역 안에 들어온
내가 불청객이라 조용히 하는 것이다.
새벽에 나와서 달리고 달려도 끝은 보이지 않고 점심때가 가까워져 도착한 곳은 케냐 마사이 사라와 탄자니아 세렝게티의 경계였다. 드넓은 초원 한가운데 케냐를 뜻하는 K와 탄자니아를 뜻하는 T를 새긴 경계석이 파란 하늘을 머리에 이고 떡 버티고 서있다.
고로 나는 마사이마라와 세렝게티를 함께 밟고 있는 것이다.
줄기차게 초원만 보다가 이제는 '마라강'이 보이기 시작했다.
강가에는 하마와 악어가 서식하고 있다가 세렝게티에서 넘어오는 누떼를 사냥한다. 누떼는 강 밑에서 지키고 있던 악어한테 습격당하는 걸 알면서도 목숨 걸고 강을 건넌다. 강 주변에 있는 동물의 두개골이 이곳이 전쟁터라는 것을 짐작하게 한다.
우리가 투어를 할 때는 누떼가 넘어오는 시기가 아니라 강을 건너는 모습을 볼 수 없었다. 한 번에 모든 것을 이룰 수 없다는 것은 알지만 아쉬움이 남았다.
마사이마라 국립공원에는 단 한 군데의 휴식터가 있다. 어느 곳에서든 맹수가 달려들 수도 있기 때문에 안전상의 문제로 정해진 곳에서만 싸온 도시락을 먹고 손도 씻고 볼일도 본다.
점심시간이 되자 사파리 투어를 하는 모든 차량들이 이곳으로 모여들어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사파리 투어 회사에서 지급되는 도시락은 차갑고 딱딱한 샌드위치와 과일 하나, 그리고 물이 전부지만, 감사히 받아 들고 그늘을 찾아 옹기종기 모여 점심을 먹었다.
종일 차에만 있다가 유일하게 발로 디디면서 걸을 수 있는 공간이다.
점심을 먹은 후 또다시 사파리가 이어졌다.
달리고 달려도 끝없이 나타나는 초원!
그 안에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는 누떼와 얼룩말!
우아한 걸음의 기린과 꼬리를 물고 가는 코끼리 가족들!
누 시체를 쪼아 먹는 독수리!
좋은 것도 계속되면 좋은 줄 모른다고 멋진 풍경이 계속되는 만큼 설렘은 반으로 감해지고 있었다.
그때 숫사자 한 마리가 나무 뒤에 있다가 우리 차량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가까이서 보는 사자의 몸집은 생각보다 더 컸으며, 드라이버의 '쉿'이라는 소리에 모두가 숨을 죽이고 사자가 지나갈 때까지 조용히 기다렸다. 뛰면 지붕까지도 오를 수 있다는 사자는 큰 몸집만큼 걸음은 느릿하지만, 아우라는 모든 사람들 숨죽이게 하기 충분했다.
사파리 투어의 마지막 일정은 마사이 방식으로 구워낸 고기를 저녁으로 주는 것이었다.
초대라고는 하지만 고기는 주겠으니 술이나 음료는 사 먹으라고 하는 것이다.
별다른 주방이 없어 식탁 옆에서 고기는 구워지고 있었으며, 음식은 접시에 담아져 나오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접시에 마사이가 고기를 들고 돌아다니면서 고기를 잘라주는 서빙 방식이었다.
갓 잡은 양고기는 냄새가 안 난다고 하지만, 이렇게 이렇게 맛있었나? 하는 의구심을 가지며 서로 고기를 달라고 연신 손을 들었다.
마사이 방식으로 구워내는 양고기에 곁들여먹는 소스는 한없이 상큼했고 멋진 풍경과 여유로움이 알아서 맥주를 찾게 하였다.
캠프로 돌아가는 길에 함께 했던 드라이버한테 맥주 좋아하냐고 물었다. 저녁 먹을 때 운전 때문에 고기만 먹고 있는 것을 봤기 때문이다. 그는 환하게 웃으며 좋아한다고 했고 캠프에 도착한 나는 드라이버에게 오늘 고생했다면서 투스커 2병을 선물했다.
받으면서 하얀 이를 들어내면서 웃는 드라이버가 나한테 고맙다고 한다.
이런 게 여행이지~
그렇게 나는 마사이마라 캠프에서 쏟아지는 별을 보면서 또 하룻밤을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