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제르바이잔에서 간단한 출국심사를 하고 국경을 건너 다리를 지나면 작은 언덕에 있는 조지아의 출입국심사로 갈 수 있었는데 커다란 배낭을 등에 메고 경사가 있는 언덕을 오르는 것은 살짝 힘들었다.
국경 넘기가 쉽다고는 하지만 이동시간과 양국의 출. 입국심사를 거치다 보면 한나절은 꼬박 걸리기 마련이었고 지금처럼 짐을 가지고 이동하면서 국경을 통과하는 것은 짜증도 함께 솟기 마련이다.
어쨌든, 나는 조지아로 무사히 들어왔다.
사람들은 아제르바이잔만큼 조지아도 생소하게 느낀다. '그루지아 소비에트 연방 공화국'에서 1991년 독립하면서 러시아어 표기인 '그루지아'를 영어 표기인 '조지아'로 표기할 것을 주변 국가에 요청했기 때문에 우리나라에서는 '조지아'로 표기하였다고 하지만, '그루지아'나 '조지아'나 생소하기는 마찬가지다.
국경을 지나 조지아에서 처음 만난 곳은 다른 역사적 시기의 유적이 비교적 그대로 남아있으며 조지아의 주요 포도 재배지인 텔라비였다. 와인 생산이 800년을 넘었다는 말처럼 국경을 넘어 텔라비까지 들어오는 내내 고속도로를 따라 지평선까지 포도밭이 펼쳐져있었다.
아제르바이잔에서는 식사 때 맥주와 함께했지만 와인 생산지에 와서도 맥주를 마신다는 것은 와인에 대한 예의가 아닐 터, 집집마다 하우스 와인도 있다는데 이제부터는 무조건 와인을 마시기로 하였다.
차량을 섭외해서 텔라비에 있는 '다른 역사적 시기의 유적'을 돌아보기로 하였는데, 전부 수도원 아니면 성당이었다.
수도원과 성당의 차이가 뭘까?
겉모습으로 판단하기에 수도원과 성당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명칭 뒤에 대성당 또는 수도원으로 명시하지 않았다면 일반 사람들은 수도원인지 성당인지 구분을 하기 힘들었다. 여러 가지 학문을 가르치던 이칼토 수도원을 시작으로 '다른 역사적 시기의 유적' 투어가 시작되었다.
이칼토 수도원은 작은 예배당은 남아있었으나, 건물 뒤로 돌아가면 예전의 성곽만 남아있었다. 포도주를 만들었던 것 같은 항아리들도 돌아다니고 있었다.
이칼토 수도원
성채가 잘 보존되어 있는 알라베릴디(Alaverdi) 대성당에서는 여자는 꼭 치마를 입어야 한다고 했다. 이날 나의 차림은 반팔과 반바지였으니 치마 비슷한 것이라도 둘러야 했다. 성당 앞의 매점에서 치마는 무료로 대여해 주고 있었기에 치마를 바지 위에 덧입고 입장할 수 있었는데 예의를 갖춘다는 의미는 좋지만 불편을 느끼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매점에 치마를 반납하면서 화분을 팔고 있는 것을 봤다. 이 매점에서 파는 화분이 질이 좋다는 소리를 들어서 지인들에게 줄 선물 요량으로 화분도 구매했다. 귀는 얇아서 좋다는 건 우선 사고 본다...
파란 지붕의 그레미 수도원은 약간의 계단을 올라가야 한다. 이쯤에서 비슷비슷한 모양의 성당인지 수도원 인지도 헷갈리는 건물들을 보고 있자니 살며시 짜증이 올라오는데 계단까지 오르려 하니 짜증이 더 샘처럼 솟는 것 같았다. 눈으로만 한번 담고, 사진으로 또 한 번 담고 그대로 뒤돌아서려 했는데 '이곳까지 왔는데 저걸 못가?' 하는 생각이 든다. 계단을 따라 올라가니 화려하지 않지만 소박한 예배당도 있었는데 그보다 눈에 뜨인 건 수도원의 방(?) 아니면 화장실 같은 공간이었다. 그 옛날 시대의 양변기 시초였을까?... 옆에는 손 닦는 그릇과 주전자도 있는 것이 격식은 다 갖춘 듯이 보였다.
그레미 수도원의 모습과 화장실
크바렐리 높은 산에 위치한 레크레씨 수도원은 주차장에서 셔틀을 타고 이동할 수 있다. 수도원에 도착하면 확 펼쳐진 넓은 포도농장이 한눈에 보인다. 오전에만 본 성당과 수도원도 몇 군데가 되다 보니 이 정도 되면 '그 넘이 그 넘이다' 종교가 없는 나는 예배당이나 건축물보다는 지금처럼 포도밭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곳에 앉아 불어오는 바람을 맞는 것이 더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