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나 Aug 20. 2019

각자의 사랑의 언어

섬세감성남과의 결혼 1년 후기

최근 남편과 나는 결혼이라는 이벤트에 적응이 완료되었는지, 슬슬 서로의 성향, 성격 등 여러 가지 방면에서 다른 사람이라는 것을 느끼고 있다. 소위 말하는 성격차이라는 걸 생생히 체험하는 중이다. 남편과 나의 성격차이뿐만 아니라 남편의 성향에 대해 깊이(?) 깨닫게 된 이벤트가 있어서 기록해 둔다.  


시작은 서로에 대해서 이래저래 옥신각신 하던 중에, 남편이 내가 본인의 일에 대해서 무관심해서 서운하다고 말했다.  남편은 개발자다.  나는 내가 개발과 전혀 관련 없는 전공과 일을 한 것 치고는 남편의 일에 대해서 꽤 잘 아는 편이고 관련해서 의견도 종종 준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본인의 일에 관심이 없어서 서운하다니, 좀 당황했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본인의 전문영역을 내가 어떤 식으로 관심을 가져줘야 하는 건지 모르겠어서 더 당황스러웠다. 어떤 포인트에서 내가 무관심하다고 느꼈냐고 물어보니,


"내가 준비하는 행사나 세미나에 한 번도 안 왔잖아!"


라는 게 아닌가... (이때 나는 내 남편이 얼마나 섬세한 사람인지, 그의 감성의 깊이를 다시 한번 깨달았다) 벙쪄있는 나를 보고 남편이 추가 설명을 덧붙였다.


"내가 '자기도 갈래?'라고 물어보면 내가 거길 왜 가냐고 말하고 내가 준비하는 행사에 신경 하나도 안 쓰잖아."


- 내가 같이 가주길 원했다면 같이 가줬으면 좋겠다고 말하면 되잖아.

- 내가 가서 할 수 있는 일도 없고, 나는 알아듣지도 못하잖아.


퍼뜩 위의 두문장이 턱끝까지 치고 올라왔지만, 정말 필사적으로 힘을 내서 삼켰다.


“자기한테 방해될까 봐 그랬어”


진심이다.

나는 내가 해야 할 일이 많은 상황에서 내 지인이 내가 챙겨줄 수 없는 상태로 방치되는 게 정말 신경 쓰이고 불편하다. 더 정확하게는 내가 해야 할 일과 내 역할에 집중 못하는 상태가 너무 싫다.  내가 남편과 같이 어떤 행사의 운영진으로 일도 하고 발표도 해야 하는 입장이라면, 내가 주최하는 행사에 남편이 그냥 구경하러 온 상황 자체가 정말 힘들 거다. 내가 챙겨줄 여력이 안되는데 그냥 순전히 나 때문에 여기에 와있는 사람이 있으니까. 이렇게 생각했기 때문에 남편이 참가하는 행사나 세미나에 가지 않았다. 이런 내 관점에서 생각하면, 그 자리에서 뭔가 기능적으로 도움을 줄 수도 없는 나는 그냥 방해되는 존재일 뿐이니까.


하지만 남편은 나와 달랐다. 기능 위주로 생각하는 나와 달리 남편은 감성적으로 접근하는 사람이었던 거다. 내가 어떤 역할을 하지 않아도 그 시간을 같이 보내주길 바라고, 본인이 열심히 준비한 것들을 그 현장에서 같이 봐주고 같이 공유하길 원했던 거였다. 그러니 내 행동이 남편 입장에서는 야속할 수밖에.


그래서 이번 여름에 남편이 준비하고, 발표자로도 참여하는 행사에 같이 따라갔다. 알아들을 수 없는 내용들로 구성된 행사에 아무 역할도 맡지 않고, 깍두기 같은 사람으로 참여한다는 게 좀 불편했지만 그래도 남편이 원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가보기로 했다.


실제로 가보니, 남편의 열심과 노력이 100여 명의 사람들이 함께하는 행사로 구현되는 걸 보는 건 또 다른 느낌이었다. 특히 남편의 발표 세션을 뒤에서 지켜보는 건 매우 생경한 경험이었다. 저 발표를 준비하기 위해서 남편이 얼마나 치열하게 고민하고 준비했는지 지척에서 지켜봤었기 때문인지 발표 구성 하나하나에서 얼마나 열심히 고민했는지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


행사 운영진으로 바쁜 남편을 도와줄 수 있는 건 없었지만 끝까지 행사를 함께 해 주고, 행사 뒤풀이 모임에서 남편이 운전 때문에 마음껏 못 즐긴다고 하기에, 온 김에 (할 일도 없고) 오롯이 남편의 신나는 뒤풀이(=음주)를 위해서 뒤풀이 자리를 끝까지 동행해주고, 술을 마신 남편을 대신해서 운전해서 집으로 돌아왔다.  돌아오는 길에 남편은 정말 정말 기분 좋아했다. 본인을 위해 시간을 내어주고 품을 들여 본인의 일과를 함께 했다는 것에 진심으로 행복해했다. 본인의 관심사, 본인이 애정을 가지고 준비하는 일에 내가 관심 가져주고 시간을 내어서 같이 해준 것이 정말로 좋다고 했다.


그때 알았다. 남편이 사랑받는다고 느끼는 방식이 5가지 사랑의 언어에서 말하는 '봉사'라는 것을. 오랜만에 찾아보니 5가지 사랑의 언어 중 '봉사'에 대한 설명이 아래와 같이 나오더라. (참고 :  https://studysolution.tistory.com/39)

파트너가 원하는 것을 해주는 것.  
요리, 식탁 정리, 설거지, 청소, 옷장 정리 등 노력과 수고가 필요한 일을 해주는 것.  '봉사'가 사랑의 원인 사람이 가장 원하는 것은
'당신을 위해 이걸 해주겠소'이다.  

그런데  '봉사'의 세부사항들(어떤 수고로운 행위를 해서 상대방을 기쁘게 해 주겠다는 행동방식)은 내가 제일 못하는 것 중 하나다. (심지어 예전에 5가지 사랑의 언어 테스트를 했을 때 '봉사'는 가장 마지막 순위의 항목이었다.) 그러다 보니 봉사는 나에게 우선순위가 가장 떨어지는 영역이다. 특히 나는 누군가가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헌신하고 일을 해주는 것을 딱히 기대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런지 내가 보기에 납득이 가지 않는데 상대가 원한다는 이유만으로 어떤 노력을 한다는 걸 불필요하게 생각했다.


그런데 (5가지 사랑의 언어에서 말하는 봉사라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보면) 남편은 나랑 정 반대의 사람이다.  남편은 본인이 볼 때 유효해 보이지 않더라도, 상대방이 원하는 방식으로 수고와 노력을 들여주는 것을 통해 표현하고,  본인도 상대방이 그렇게 해 줄 때 사랑을 느끼는 사람이었다.  이러니 남편은 나에게서 사랑받는다는 느낌을 받지 못한 채 항상 서운해하고, 나는 나에게 요구하는 게 너무 많다고 느끼고 힘들어하는 악순환의 반복이었던 거다.


내가 행사에 함께 해주고 운전까지 해줬던 날, 남편은 정말 피곤해했으면서도  잠들기를 아까워할 정도로 행복해했다.  그렇게 신나 하는 모습은 최근 몇 달간 처음 보는 모습이었다.  그간 은근하지만 확실하게 삐그덕 대는 부분이 있었는데, 저렇게 생각이 정리되니 오히려 명료해졌다. 내가 보기에는 효용가치가 별로 높지 않더라도 남편이 원하는 방식으로 시간과 노력을 써주는 것으로 남편이 행복해한다면 (물론 꽤 애를 써야 하긴 하지만) 시간과 노력을 들여줘야겠다고 생각했다.



표현하고 느끼는 방식은 다를지라도, 나는 남편을 사랑하고 사랑하는 내 남편이 행복하기를 바라니까.



이제 막 결혼한 지 1년이 되어간다.

아직 서로가 서로에 대해서 알아갈 것들이 한참 남았다는 것을 온몸으로 느낀다.

조금씩 부딪히고 가끔은 서운해도 결국에는 우리가 이렇게 서로를 조금씩 더 알아가고 이해해갔으면 좋겠다.  

포기하지 않고, 서로를 더 아끼고 사랑하기 위해서 각자의 방식으로 계속해서 노력했으면 좋겠다.


계속 고생해보자!

힘내자!

남편아!






 

매거진의 이전글 빡센 아내를 만난 남편에게, 치얼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