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까리 하고 난 뒤의 회고.
남편과 나는 종종 말다툼을 한다. 어제도 오래간만에 마우스 투 마우스로 뻑적지근하게 한때까리 했더니 (=논쟁) 서로 지칠 대로 지쳐서 남편은 혼자 산책하러 나가고 나는 침대에 뭉쳐져 있었다. 각자 생각이 다를 뿐 잘못한 건 없다는 걸 알아서 사과할 것도 없었고 단지 각자가 서로의 입장을 알면서도 완전히 이해하진 못하는 그 지점에서 탈진한 상태였다. 이날의 한때까리는 나보다 조금 더 마음씨가 넓은 남편이 먼저 사과해줘서(사과할 게 없지만 먼저 다가와줌) 언제 그랬냐는 듯 마무리되었다. 아마 대부분의 부부들의 싸움의 패턴이 저럴 것 같다. 잘잘못을 명백히 따지기 어렵지만 부딪히는 문제들로 인한 갈등.
우선 내가 생각하는 부부 사이에서의 싸움의 정의는 다음과 같다. 부부 사이에 싸움이라고 할 수 있는 행위는 두 사람이 1) 대등한 위치에서 2) 서로 다른 의견을 공유(말하고, 듣고, 질문하고, 대답하고) 하는 거
라고 생각한다. 대화와 싸움의 차이는 부정적 감정의 개입 유무 정도 아닐까? (기분 좋으면 대화, 기분 안 좋으면 싸움?)
그런 의미에서 다음과 같은 것들은 싸움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소리 지르고 상대방 말 안 듣는다. (X) : 이건 땡깡 혹은 화풀이. 싸움 아님.
물리적으로 치고박는다. (X) : 이건 불법행위. 신고.
욕하면서 인신공격한다. (X) : 이건 돌이킬 수 없다. 싸움이 아니라 부부 관계의 종료 사유라고 생각함.
누군가 한쪽이 일방적으로 잘못해서 혼난다 (X): 의견 교환할 거 없이 한쪽은 그냥 반성 ㄱㄱ. (오해가 있으면 풀어야 하지만)
한쪽이 계속 기분 나쁘게 말한다 (X) : 시비 터는 거임. 혼나야 함.
최근 우리 부부는 꽤 자주 싸우는 편이다. 결혼으로 인한 여러 가지 변경사항들에 얼추 적응하기 시작하면서 이제 적응해야 하는 대상이 '상황'이 아니라 각자의 '배우자'로 바뀐 것이 느껴진다. 싱글에서 유부로의 패치는 어느 정도 끝났지만, 약 30여 년간 각자의 방식대로 살아온 삶의 모습을 상대방의 특성에 맞게 다시 매만져야 하는데 이게 쉽지 않다. 특히, 이 과정에서는 ' 더 예민한 사람'이 더 힘들어지게 되는데, 다행인지 불행인지 우리 부부 중 남편이 '더 예민한 사람'이다.
최근 나의 퇴사와 거주지역 이동 등으로 이해 여러 가지가 맞물려서 우리 둘 다 예민한 시기를 지나고 있다. 모두가 그렇듯 사람이 예민해지면 자연히 인내심도 평소보다는 낮아지기 마련. 만사에 무덤덤하고 무심한 나보다 꼼꼼하고 예민한 남편이 먼저 터졌다. 남편은 수건을 넣는 방향, 휴지를 거는 방향, 빨래를 하는 주기 등등 본인을 힘들게 하는 요소들을 내뱉기 시작했다. 내 입장에서는 그런 것들이 힘들다는 말도 안 하고 있다가 왜 갑자기 힘들다고 말하는지 이해가 안 됐다. 그러다 보니 일상 전반에 거쳐 남편이 나보다 더 에너지를 많이 쓰는 편이다.
다른 글에도 많이 써두었는데, 남편은 정말 섬세 감성남이다. 남편이 나보다 훨씬 빡빡한 기준으로 삶을 돌보는 스타일이라는 것은 처음부터 알고 있었는데,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깨달은 것은 표현을 직설적으로 잘 못하는 타입이고 본인이 불편한 것을 입 밖으로 꺼내기까지 시간도 힘도 많이 드는 사람이라는 것이었다. 반면에 나는 덤벙거리고 대충대충 지낼 뿐만 아니라,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그때그때 다 이야기해버리는 스타일이다.
그러다 보니,
1) 왜 내가 알아듣도록 말을 안 하냐
2) 표현하는 게 힘들다
3) 말을 해라
4) 나름 말을 한 거다 -> 1) 반복
이런 패턴으로 우리는 꽤 자주 옥신각신했다. 이 과정에서 나는 나대로 내가 몰랐던 남편의 의사표현 방식을 알아가고 남편은 남편대로 내가 어떤식으로 의사표현을 하는지 학습하는 것 같다. 또 서로가 어떤 상황에서 가장 스트레스 받는지, 어떨 때 에너지를 가장 많이 쓰는지도 하나씩 알아가고 있다
서로의 표현 방식이 달라서 힘든점도 있지만 이렇게 서로의 기질이 달라서 좋을 때도 있더라. 섬세한 남편이 에너지가 고갈돼서 바닥을 칠 때, 남편이 이성을 잃고 조금 실수를 하더라도 상대적으로 덜 힘을 빼는 내가 이성의 끈을 붙잡고 힘을 낼 때까지 기다려줄 수 있는 여유가 되는 편이다. 반대로 감정의 변화폭이 큰 내가 흥분하거나 엇나갈 때는 성정자체가 평안한 편인 남편이 나를 잘 진정시킨다. 덕분에 남편과 나 둘 다 정신적으로 바닥을 기는 상황은 거의 없다.
이렇게 서로 받아주 다른 점을 더 알아가는 거겠지. 생각해보면 각자의 삶을 각자의 방식대로 살아가던 두 어른이 만나서 일상의 모든 영역을 맞춰가는데 좋은 것만 있는 게 오히려 더 이상한 것 같다. 결혼생활은 두 어른의 일상을 하나로 만들어 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아마도 평생 지나가야 하는 과정이지 않을까. 서로의 좋은 점과 나쁜 점, 바꿀 수 있는 것과 바꿀 수 없는 것을 찾아가는 과정. 각자가 조금씩 깎여 가면서 맞춰가는 과정이 부부의 싸움인 것 같다. 단, 서로에게 더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한 과정이니만큼 상대방의 중심이 망가지지 않도록 조심해야한다 . 너무 크게 다치면 관계가 깨지니까.
서로의 약한 부분은 차차 알아가고, 달래고 쓰다듬으면서 그렇게 더 편안한 두 사람이 되는 과정이 '싸움' 이 아닐까 싶다. 꼴랑 1년 살아놓고 이렇게 다 해탈한 사람처럼 글을 써놓는 이유는, 나중에 진짜 화났을 때 이렇게 써놓은 글을 보면 좀 마음이 달래지지 않을까 싶어서 써둔다.
미래의 나, 힘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