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추고 오세요, 아이는 잠시 잊고.

아이 둘 데리고 훌라댄스 배우러 가기

by 오솔비

한 달에 세 번, 월요일 아침 10시, 나는 23개월, 4개월 아이 둘을 데리고 외출을 한다. 가방에는 아이들 간식, 분유, 기저귀, 장난감, 그리고 파우스커트를 넣고 말이다.

61739408.jpg 파우스커트 (www.pauskirtshop.jp)



그렇다. 나는 훌라댄스를 배우러 다닌다. 아이 둘을 데리고 말이다.


처음부터 훌라 댄스에 관심이 있었던 건 아니다. 일본은 우리나라에 비해 훌라 댄스를 취미로 선택하는 사람이 많기도 하고, 훌라 댄스 학원도 동네에서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하지만 내게 훌라댄스는 살랑거리는 스커트 입고 꽃 목걸이 두르고 추는 하와이 춤이라는 것 말고는 딱히 지식도 없었고, 흥미도 없었다.


훌라댄스를 시작하게 된 건, 순전히 아이들 때문이었다.

동네 지자체 홈페이지에서 두 아이를 데리고 갈 수 있는 장소나 모임을 찾다가 우연히 훌라 댄스 서클을 발견했다. 평범한 서클이었다면 그냥 지나쳤겠지만, 거기에 쓰인 소개 문구가 나의 눈을 사로잡았다.


훌라 댄스 함께 배워보시지 않을래요? 아이들 데리고 오셔도 된답니다.


아이를 데리고 가도 된다고? 그게 무슨 말이지? 자세히 읽어보니 거기엔 이렇게 적혀 있었다.


레슨은 2부 구성으로 진행됩니다. 레슨 참가자를 두 그룹으로 나누어 한 그룹은 레슨을 받고, 한 그룹은 그동안 아이들을 함께 돌봅니다. 첫 번째 그룹의 레슨이 끝나면 역할을 바꾸어 두 번째 그룹이 레슨을, 첫 번째 그룹이 아이들을 돌봅니다.


아, 바로 이거다! 나는 바로 훌라 댄스 서클에 가입했다.








두 아이를 데리고 갈 만한 모임이 우리 동네에는 꽤 있었다. 예전에 소개했던 '육아 살롱' 외에도 아이들과 함께 근처 공원으로 소풍을 간다거나 놀이를 하는 모임들도 여럿 있었다. 물론 그런 모임들이 많이 있어서 좋다. 아이들도 또래 친구들을 만날 시간을 가질 수 있고, 나도 다른 엄마들(또는 아빠들, 하지만 99.9%가 엄마들)과 육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수도 있고. 하지만 거기엔 '나'가 없다.


아이 둘을 데리고 나간 육아 모임에서 만난 분과 대화를 하다가 이런 일이 있었다.

"나이가 어떻게 돼요?"

"저요? 올해 33살이요."

당황한 듯한 표정이 상대방의 얼굴을 스쳤다. 아, 내 나이가 아니라 아이 나이를 물어본 거였구나.

당연한 건데도 가끔씩 나는 내 나이를 말해버리곤 한다. 그리고는 바로 깨닫는다. 아, 또 실수했구나. 몇 개월이냐고 물어볼 때는 제대로 대답하는데, 몇 살이냐고 물어보면 그만 내 나이를 말하곤 하는 것이다. 내 나이 따위 상대방은 궁금하지도 않을 텐데.


육아를 시작하면서 나는 늘 아기 뒤로 밀려나 있었다. 사람들은 내가 안고 있는 아기에게만 관심이 있었다. 내가 어떤 인생을 살아왔는지, 어떤 일을 하는지, 무얼 좋아하는지는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장소는 없었다. 아이를 데리고 내가 갈 수 있는 곳은, 아이 이야기를 해야만 하는 곳뿐이었다.

그러다가 발견한 곳이 훌라 댄스 서클이었다. 아이를 데리고 가도 되지만, 아이 이야기가 아닌 내 이야기를 해도 되는 곳.





훌라 댄스 서클에 간 첫날, 처음 만난 사람들에게 받은 첫 질문은 "훌라 댄스 배워보신 적 있어요?"였다. 당연한 그 질문이 어찌나 반가웠던지.


나는 1부 레슨에 들어가게 되었고, 두 아이를 다른 엄마들에게 맡겼다. 예상대로 첫째 아이는 자기를 두고 가지 말라며 울기 시작했다. 그러자 한 분이 너무나도 익숙하게 아이를 번쩍 들어 올려 안고 달래면서 나에게 이야기했다.

"괜찮아요. 여기는 걱정하지 말고 춤추고 오세요."


1시간 동안 나는 아이 일은 잊고 춤을 추었다. 익숙하지 않은 동작을 외우느라, 따로 노는 팔과 다리를 어떻게든 맞춰보고자, 아이 일은 떠올릴 겨를도 없었다.

그렇게 보낸 1시간이 너무나도, 개운했다. 곤히 잠든 아이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볼 때 찾아오는 행복감과는 또 다른 느낌의 행복감이랄까.


레슨이 끝난 후에는 함께 1부 레슨을 들은 분들과 모여 앉아 아이들을 보았다. 여느 육아 모임처럼, '저희 아이는 맨날 흰 밥만 먹으려고 하는 거 있죠', '벌써 기어요? 빠르다~' 같은 이야기도 물론 나눴다. 하지만, '훌라 댄스는 하신지 얼마나 되셨어요?'나 '어떻게 하면 팔을 그렇게 우아하게 움직일 수 있어요?' 같은 대화들도 있었다. 그리고 그 대화들은 내가 매주 훌라 댄스 서클을 기다리는 이유 중의 하나가 되었다.








매거진의 이전글육아 살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