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거 혹시 필요하면 가져갈래? 마음에 드는 거 있나 한 번 보렴."
시어머니가 내게 건네준 건 오래된 동화책이었다. 살짝 빛이 바래 있었고, 가장자리는 누르스름했다. 책장을 넘기자 오래된 책에서 나는 냄새가 살짝 올라왔다. 오래되긴 했지만, 종이도 빳빳하고, 전체적으로 깨끗했다.
"어, 나 이거 기억나. 어릴 때 읽던 건데."
남편이 옆에 다가와 반갑다는 듯이 책장을 넘긴다.
남편이 어릴 때 보던 거라면 30년은 지났을 텐데, 그걸 지금까지 보관하고 있는 것도 대단하다 싶었지만, 그보다 놀란 건 시어머니가 보관하고 있던 30년 된 동화책들이 내가 최근에 아이를 데리고 간 서점에서 본 책들과 같다는 것이었다.
처음으로 집어 든 책은 「ぐりとぐら(구리와 구라)」라는 책이었다. (한국에도 번역본이 나와있다. 제목은 "구리와 구라의 빵 만들기") 책장을 넘겨 맨 뒷 장에 적힌 발행 연도를 확인했다.
1963년 12월 1일 발행
1992년 11월 20일 제84쇄
한국에 들어갈 때마다 아이를 데리고 서점에 가곤 했다. 우리나라 책을 비롯해서 전 세계의 멋진 그림책들이 줄지어 놓여있다. 알록달록한 색깔과 다양한 그림체. 어른인 나도 눈길이 간다. 하지만, "아, 이 책 재밌었는데!"하고 아이에게 말해 줄 수 있는 책은 없다.
최근에 혼자 서점에 갔을 때의 일이다. 동화책을 하나 사려고 고르고 있었는데, 옆에 5살 정도 되어 보이는 여자 아이와 엄마가 서서 책을 살펴보고 있었다. 아이는 쉽사리 결정을 못하겠다는 듯, 이런저런 책을 꺼냈다가 다시 책장에 넣고를 반복했다. 그때 엄마가 책 한 권을 뽑아 들어 아이에게 건네며 말했다.
"이 책 어때? 엄마도 어렸을 때 읽었던 건데 재밌어."
별 것 아닌 이 대화가 난 참 부러웠다. 내가 느꼈던 재미와 감동을 아이와 공유할 수 있다는 것 말이다.
누군가에게는 어떤 장소일 수도 있고, 어떤 음식의 맛일 수도 있을 테다. 종류는 달라도 자신이 행복을 느낀 일을 아이도 경험해 보았으면 하는 마음 , 아이와 그 기쁨을 나눴으면 하는 마음은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책에 대한 애착이 강한 나에게는 그게 책이었다. 내가 감동을 느낀 책을 아이에게 권하는 건 적어도 15년은 지나야 되겠거니 생각했었다.
일본에는 롱셀러 그림책이 많다.
가장 최근에 산 그림책도 1967년 1쇄 발행, 2020년 167쇄 발행이었다.
이렇게 오래된 책들이 눈에 제일 잘 띄는 곳에 책 표지가 보이게끔 꽂혀있곤 한다. 그림체가 촌스러운 느낌도 없고, 어른인 내가 읽어도 재밌으며, 무엇보다 아이들이 좋아한다.
한국에서 서점에 가거나, 유아 도서전 같은 곳에 가면 깜짝 놀라곤 한다. 다채롭고 세련되었으며 기발한 책이 즐비하다. 두뇌 개발에 좋을 것만 같은 책도 많다. 아이의 두뇌를 자극하고, 흥미를 일으키는 책도 좋다. 나는 그저 거기에 엄마 아빠와 함께 웃을 수 있는 그림책, 엄마 아빠가 간직한 추억과 같은 추억을 선사해주는 그림책도 있었으면 하고 바란다.
어렸을 적 읽었던 책을 아이에게 읽어주는 남편이 참 부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