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모임에서 만난 남성분에게서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
"나는 내가 처자식을 잘 부양하고 있다는 것에 자부심을 느껴요."
그분은 꽤 높은 연봉을 받는 샐러리맨이었고, 전업주부인 부인과 아이 한 명과 함께 살고 있었다. 부인이 일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 부인과 아이에게 여유로운 삶을 선사해주고 있다는 사실에 대한 자랑스러움이 그의 말에는 묻어있었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왜인지는 모르겠으나 그의 그 말 한마디가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책임감 있게 살아가는 그의 모습을 왜인지 꼬아서 보고만 마는 내가 너무 부정적이라는 것도 안다.
특히나 양육비를 주지 않는 무책임한 가장이 아직도 많은 이 세상에서, 책임감 있는 가장의 모습은 더할 나위 없이 멋있다.
그런데 말이다. 그냥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제대로 부양하고 있다는 것에 대해 자부심을 느낀다면, 제대로 부양하지 못하면 부끄러움을 느껴야 한다는 걸까. 1등을 자랑스러워하는 세상에서 2등은 평가받지 못하는 것처럼 말이다. 부인과 함께 가족을 부양하면, 그건 자랑스럽지 못하다는 이야기일까. '남자라면 응당 가족을 제대로 부양해야지'라는 걸까?
나는 일을 한다. 남편과 함께 돈을 벌고 함께 가족을 부양한다.
물론, 취미로 일을 하는 건 아니다. 그래야 생활이 되기 때문에 한다. 적당히 먹고살고, 가끔 여행도 가고, 부모님께 용돈도 드리고, 아이들에게 피아노나 테니스도 가르치기 위해서 말이다.
그런데 내가 일을 하는 건 그 이유 때문만은 아니다. 그게 내 삶이기 때문이다. 누구의 부인이거나 누구의 엄마가 아닌 나로서 살 수 있는 방법이며, 스스로 돈을 벌고 사회와 소통할 수 있는 수단이기 때문이다. 그를 위해 오랜 기간 교육받아왔으며, 삶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했다(고 생각한다.). 누구나 그렇듯이.
그리고 그게 내가 남편과 동등한 파트너로서 살아갈 수 있는 길이기 때문이다. 함께 책임을 지고, 함께 가족을 지탱하는.
엄마는 결혼을 계기로 일을 그만두셨다. 그리고 결혼 생활을 하는 동안, 스스로 돈을 벌 수 없어서 남편에게 종속적으로 살아야 했던 것이 후회스러울 때가 있으셨던 것 같다. 엄마는 날 남부럽지 않게 교육시키셨고, 늘 나에게 전문직을 가지라고 말씀하셨다. 엄마가 아는 세상에서는 전문직만이 결혼을 해서도 계속 일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다.
나는 전업주부였던 우리 엄마에게 늘 감사한다. 내 삶에는 엄마의 희생이 있었음을 안다. 엄마는 생각했을 거다. 나는 그렇게 못 살았지만, 내 딸은 조금 더 나은 세상에서 살기를. 당당하게 일하고, 자기 꿈을 실현하면서 사는 삶을 누리기를.
나는 그런 엄마의 마음을 짊어지고 산다.
어렸을 적 아빠는 퇴근길에 과자나 아이스크림을 양손 가득 사 가지고 오시곤 했다. 나와 내 동생이 다 먹을 수도 없을 만한 분량의 과자. 엄마는 항상 아빠를 타박했다. 저번에 사 온 것도 남아 있는데 왜 또 돈 아깝게 이걸 사 오냐고. 이게 다 얼마냐고. 엄마가 절약하면서 사는 걸 옆에서 늘 지켜보아왔기에, 한소리 들을 걸 알면서도 매번 그런 걸 사 오는 아빠가 도통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런 아빠의 마음을 이해하게 된 건 회사생활을 시작하고나서이다. 회사생활은 종종 즐거웠지만, 고단할 때도 많았다. 내 마음대로 되는 건 뭐 하나 없는 것 같을 때, 집에 오는 길에 슈퍼에 들려 과자 같은 걸 사곤 했다. 돈을 쓸 때만은 무언가 보상받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내가 통제할 수 있는,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처럼 느껴지곤 했다. 아빠가 겪어야만 했던 사회생활의 고단함을 알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나는 그런 아빠의 마음을 이해하며 산다.
그렇기에 나는 일을 한다. 자기실현을 위해서. 가족 부양이라는 때로는 무거운 짐을 남편과 나눠지기 위해서.
물론 나도 안다. 아이 둘을 가진 엄마이기 때문에 아이들이 얼마나 귀여운 지도, 아이를 두고 일을 나가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도 안다. 또, 100세까지 산다는 인생, 일이 없을 때도 있고, 생각처럼 일이 안 풀릴 때도 있고 이런저런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지는 것도 안다. 지금 일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평생 일하지 않는다는 말이 아닌 것도 안다. 중요한 건 내가 선택할 수 있느냐 아니냐라고 생각한다.
내가 일을 하고 싶을 때 일을 할 수 있느냐 아니냐 말이다.
누군가는 아이를 봐야 하니 연봉이 낮은 쪽이 일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승진을 하려면 역시 야근도 하고 인맥관리도 하면서 일에만 집중할 수 있어야 하니 한쪽으로 몰아주자 전략으로 한쪽은 부수입을 올릴 정도로만 일하는 게 아니라 말이다.
어린아이는 손이 많이 간다. 집안일도 늘어난다. 처자식을 부양하는 것에 자부심을 느낀다고 했던 그분은, 자신이 그만큼 일을 할 수 있는 데에는 부인의 보이지 않는 노동이 있었음을 알까. 부인의 삶의 기회비용을 인지하고 있을까.
나는 나를 부양하지 않는 남편이 자랑스럽다. 내가 나 스스로를 부양할 수 있도록 육아와 집안일을 나눠맡아주는 남편이,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지만, 그래도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