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 집안 보고 결혼해야 된다

by 오솔비

"결혼할 때는 남자 집안도 봐야 돼. 너무 없는 집이랑 결혼하면 안 된다. 이왕이면 차남이면 더 좋고."

내가 결혼하기 전까지 엄마가 늘 나에게 던지던 말이다. 딱히 맥락 같은 건 없다. 엄마 머릿속에 떠올랐을 때라면 밥 먹다가도 빨래를 개다가도 엄마는 말하곤 했다.


'아, 그래, 그래.'하고 아무렇지도 않게 대꾸할 수 있게 되기까지는 꽤 많은 시간이 걸렸다.

일단, 난 이 말이 싫었다. 돈 보고 결혼하라는 거 같아서 싫었다. 내 결혼에 대해서 무언가를 바라는 것 같아서 싫었다. 엄마는 날 있는 힘을 다해서 교육시키셨고, 내가 당당하고 멋지게, 그리고 여유롭게 살기를 바라셨다.

그런 교육 아래서 난, 그러한 여유로운 삶은 내가 만들어야 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결혼할 때는 돈을 보라니, 모순이지 않나. 책 좀 읽었답시고 난 그런 엄마를 못마땅하게 바라보기도 했던 것 같다.

그냥 엄마가 즐겨보는 일일드라마 탓이겠거니 했다. 왜 있잖은가. 매일 저녁 8 시대쯤 하는 일일드라마. 여주인공이 인물 번듯하고 성격 좋지만 찢어지게 가난한 남자 주인공과 결혼하겠답시고 부모 반대 다 뿌리치고 기어이 결혼하고야 마는 드라마. 우리 집은 그런 드라마에 나오는 부잣집도 아니었는데 말이다.






잔소리 정도로만 들렸던 그 말이 다른 의미로 다가온 건 대학교 3학년 때였다.

역사사회학이란 수업을 들었는데, 그 수업의 첫 번째 과제가 부모님의 삶에 대해 조사해오기였다. 부모님의 어렸을 적부터 지금까지의 역사에 대해 말이다. 부모님이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어떤 선택을 해왔는지, 그 삶과 선택은 어떤 시대적 배경에서 가능했던 건지, 어떤 것들이 시대의 큰 흐름의 영향을 받았던 것인지 등등을 부모님과의 대화를 통해 알아보라는 것이었다.

생각해보면 난 부모님의 삶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었다. 내가 태어나기 전 일은 딱히 궁금해한 적도 없다. 엄마 아빠가 어떻게 만났나 정도 한 번 물어봤으려나.


엄마가 어떤 소녀였고 어떻게 학창 시절을 보냈으며, 어떻게 아빠를 만나 결혼했는지는 관심이 없었지만, 엄마의 가치관이나 사고방식은 늘 내가 반감을 표현하는 대상이었다. 집안 보고 결혼하라는 것도, 장남은 안된다라는 것도 구닥다리 같았고 속세에 찌든 것처럼 느껴졌었다.


그런데 말이다. 엄마가 살아온 삶에 대한 이야기를 듣다 보니,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흔한 이야기라 자세한 이야기는 생략하지만, 집안 보고 결혼하라는 말도, 장남이랑 결혼하지 말라는 말도 그때서야 비로소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런 일을 겪었다면 나 같아도 내 딸에게 그렇게 말했을 것 같았다. 엄마의 삶 그 자체에도 눈물이 났고, 그런 엄마의 삶을 들여다보려고조차 하지 않았던 스스로가 부끄러워서도 눈물이 났다. 아무것도 몰랐으면서, 다 아는 것 마냥 난 그렇게 엄마를 보아왔다.


엄마의 삶에 대해서 얼마나 아는가?

엄마가 늘 하는 잔소리가 어디서 오는지 생각해본 적 있는가? (물론 엄마 친구 자식일 때도 종종 있지만)

나는 스물이 넘어서야 겨우, 아주 조금, 엄마의 삶에 대해 알게 되었다.






물론 지금도 엄마의 저 말에 동의하지는 않는다. 나는 엄마와는 다른 시대에, 다른 배경 속에서 살고 있기 때문이다. 나에게는 아마도 엄마 때보다 더 많은 선택권이 있을테니까. 하지만 부정은 하지 않는다. 그런 말을 하게 만든 엄마의 삶을 이해하기 때문에.


그 과제를 제출한 지 어느덧 십여 년이 지났다.

나는 서른이 넘어 결혼도 했고 아이도 낳았다. 하지만 아직도 스스로가 어른이라는 게, 두 아이의 엄마라는 게 믿기지 않을 때가 많다. 그러다 보니 20대 때 결혼해서 나를 낳고 인생의 시련을 몇 번이나 겪으면서도 꿋꿋이 살으셨던 엄마가 너무나도 크게 느껴진다. 엄마가 얼마나 용감했는지, 얼마나 강했는지가 너무나도 절절하게 다가온다.

여전히 엄마와는 티격태격하고, 싸우기도 한다. 하지만 동시에 여전히 엄마를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엄마가 살아온 삶을 알고 이해하고 존중하려 노력한다.









작가의 이전글처자식을 부양하는 남편, 부양하지 못하는 남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