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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솔비 Jul 18. 2020

한 가지 잣대로 사람을 평가했다가 뒤통수 맞은 날

  같은 부서에 중국인 선배가 있다. 

  직급은 평사원인데, 나이는 부장님과 같은 40대 초반이다. 

  일본에 온 지 20년 되었다고 하는데, 중국어가 묻어나는 독특한 억양 때문에 그의 일본어는 도통 알아듣기가 쉽지 않다. 


  그 때문일까. 입사한 지 15년 남짓 되었지만 그는 여전히 평사원이다. 아무도 그에게 고객을 만나거나 판매전략을 세우는 등의 중요한 일을 시키지 않는다. 그는 그저 잔심부름을 할 뿐이다. 회식에도 곧잘 참여하고, 사람들과도 늘 잘 어울리지만, 그뿐이다. 부장도 과장도 그에게 어떠한 기대를 하지 않고, 그런 분위기는 다른 부원들에게도 전염되어 다들 그 중국인 선배를 그렇게 대했다. 사람은 좋은데, 일은 못하는 그런 사람. 부서에 존재하긴 하지만, 어떤 일을 하는지는 모르는 그런 사원. 


  하지만 왜인지 그는 늘 싱글벙글이다. 무시당해서 서러워하는 느낌도 없고, 주눅 든 모습도 딱히 보이지 않는다. 






  알고 보니 그 중국인 선배, 도쿄만이 내려다보이는 고급 아파트의 50층에 살며, 자녀는 유명 사립학교에 보낸다. 술자리에서 우연히 듣게 된 그의 프로필은 더 대단했다. 현재 거주하고 있는 고급 아파트 이외에도 한 채의 아파트를 더 소유하고 있으며, 신주쿠에는 땅이, 하와이에는 별장이 있단다. 임대 수입으로만 한 달에 200만 엔이 넘게 들어오는데, 한 달 임대수입이 300만 엔을 넘기면 회사를 그만둘 거란다. 

아하. 이 사람은 취미로 회사를 다니는구나. 그런데 어떻게? 부모님이 부자인가? 


  일본에 온 지 20년, 아무것도 없이 시작했다고 했다. 회사 다니면서 부동산과 주식투자를 공부했고, 500만 엔을 대출받아 부동산을 샀다고 했다. 그 부동산 가격이 상승해서 처음 돈을 벌었고, 그 돈으로 주식과 부동산 투자를 거듭해서 지금의 부를 이뤄냈다고 한다. 


  내가 자산운용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고 하자, 그는 대뜸 한국의 기준금리에 대해 물었다. 그러더니 지금 미국 금리가 어쩌고 저쩌고, 요새 원유 가격이 어쩌고 저쩌고, 구리가 어쩌고 저쩌고. 그렇다, 당시 난 아무것도 몰랐고, 어쩌고 저쩌고로 밖에 들리지 않았다. 그렇지만 그의 눈이 반짝이는 건 알았다. 제대로 알고 있는 것에 대해 논할 때는 누구나 말투에 자신감이 묻어난다. 그 자신감 덕에 그의 어눌한 일본어 억양도 잊을 정도였다. 


  나 또한 그 중국인 선배를 무시했었다. 무시한다고는 마음속으로조차 생각한 적 없고, 그러고 싶지도 않았지만, 남들처럼 나도 그랬던 것 같다. 도토리 키재기인 줄 알면서도, 내 일본어는, 내 일솜씨는 그 사람보다 낫지 하고 속으로 그 사람과 나 사이에 선을 그었던 것 같다. 그 사람을 무시하는 그 분위기 속에 나도 아무런 저항 없이 휩쓸리고 말았다. 


  회사는 일을 하고 성과를 내야 하는 곳인 건 맞다. 그렇지만 그 한 가지 잣대로 그 사람의 전부를 알았다는 냥 그 사람을 평가하고 무시해도 되는 걸까? 나의 중국인 선배는 그저 자기가 제대로 쓰일 만한 곳에 배속받지 못한 건 아닐까? 자신의 실력을 발휘할 수 있는 곳이 따로 있는데 말이다. 

  그는 일본어는 못할지 몰라도, 요새 누구나 배우고 싶어 하는 중국어는 그의 모국어이다. 세계 시장 동향은 그 누구보다 빠삭하다. 게다가 그는 15년 전, 우리 회사에서 남성으로서는 처음으로 육아휴직을 받은 직원이라고 한다. 






  인생에는 수많은 잣대가 있다. 회사생활이나 학교생활이나 그 사람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는 그저 귀찮을 게 아닐까? 다른 사람을 들여다보는 것이. 나를 성적으로만 평가하지 말아 달라고 학창 시절 때 한 번이라도 생각해 본 적이 있다면, 다른 사람을 그저 그의 연봉이나 학력 등으로만 평가하는 것이 얼마나 큰 폭력이 될 수 있는지, 얼마나 위험한 일이 될 수 있는지 짐작할 수 있으리라. 

  그 일이 있고 난 뒤로는 항상 생각한다. 게을러지지 말자고. 단편적인 정보로 그 사람에 대해 다 알았다는 양 게으름 피우지 않기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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