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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솔비 Jul 16. 2020

여성 커리어 세미나에는
왜 여성만 있어야 할까?

  내가 다니는 회사는 여성이 일하기 편한 직장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편이다. 육아휴직도 아이 한 명당 3년까지 받을 수 있고 아이가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단축근무도 가능하다. 여성 관리직을 늘리려는 노력도 꾸준해서, 오히려 여성이라는 점이 승진에 있어서 플러스로 작용할 때도 종종 있을 정도다. 


  '여성 커리어 세미나'는 그 일환으로 인사부가 기획한 행사였다. 입사한 지 1~2년 된 신입 여성 사원들을 모아놓고 선배 여성 사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는 그런 류의 세미나 말이다. 일하는 여성이 겪게 될 수도 있는 결혼, 출산, 육아와 일을 어떻게 양립할 것인지 함께 생각하는 시간을 가지자는 취지인 것 같았다.


  일견 여성을 위한 세미나인 것 같지만, 과연 그럴까. 




  내가 참석한 여성 커리어 세미나에서는 3명의 관리직 여성 분이 멘토로서 자신이 관리직이 되기까지의 경험을 이야기해주었다. 한 분은 30대 후반의 미혼 여성, 한 분은 40대 중반의 여성 분으로 기혼이며 아이가 둘, 마지막 한 분은 40대 초반의 아이가 없는 기혼 여성이었다. 


  그런데 이 멘토 선정이 참 웃기다. 관리직이 된 여성분 세 명 중 그 누구도 관리직이 되기 전까지 출산을 경험하지 않았다. 아이가 둘인 40대의 관리직 여성분은 30대 후반에 결혼하여 40대 초반에 출산을 하였다. 관리직이 되고 난 후의 일이다. 출산과 육아를 경험하는 여성 사원들의 상당수는 30대이다. 육아를 하면서 관리직에 오르는 건 어렵다는 반증처럼 보여서 씁쓸했다. 출산과 육아와 일을 어떻게 양립할 것인지에 대한 답은 그 누구에게도 얻을 수 없었다. 


  게다가 두 명의 아이를 키우면서 회사를 다니는 관리직 여성분은 남편도 같은 회사에서 같은 직급으로 일을 한다는데, 단축근무를 하며 어린이집에 아이를 데리러 가는 일은 항상 그분이 한단다. 그분은 단축근무를 하면서도 일을 제대로 하는 방법과, 최근엔 냉동식품도 잘 나와있다는 등의 가사부담을 줄이는 그분만의 노하우를 이야기하셨다. 그분이 쌓아온 커리어에는 경의를 표한다. 일과 육아를 동시에 해내고 있는 그 열정에도 말이다. 하지만 뭔가 께름칙했다.

  결혼과 출산, 육아는 여성만 하는 건가? 

  왜 여성들만 모여서 출산과 육아를 어떻게 일과 병행시킬 수 있는지 고민해야 하는 거지?




  내게는 일 잘하는 사수가 있다. 일을 잘하는 탓에 일이 많이 주어지기도 했다. 야근을 말 그대로 밥먹듯이 해서, 그분이 정시에 퇴근하는 날은 집에 무슨 일이 있나 싶을 정도였다. 그러던 어느 날, 그분이 글쎄 정시 30분 전에 퇴근을 하시겠단다. 이유를 물어보니 부인이 일을 하기 시작해서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겼단다. 평소엔 부인이 아이를 데리러 가는데, 오늘은 사정이 있어서 자신이 데리러 가야 한단다. 그러면서 그분이 한 말이 잊히지가 않는다.

  

  "단축 근무하는 사람들이 내심 못마땅했었어. 나는 매일같이 야근을 하는데, 그 사람들은 네 시면 가버리곤 하잖아. 그런데 육아라는 게 나도 해보니까 너무 힘들더라고. 일하고 나서 집에 돌아가도 쉴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아이가 갑자기 아프기라도 하면 진짜 어쩔 수가 없더라. 부인이 일 시작하기 전까진 진짜 몰랐어."  


                                                                        




  여성 커리어 세미나는 누구를 위한 것일까?

  출산과 육아를 애초에 여성만의 일이라고 규정해놓고 거기서 방법을 찾는 게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여성이 커리어를 쌓기 좋은 환경을 만들고 싶다면, 출산과 육아를 여성에게만 짐 지우지 않는 환경을 만들어야 하는 건 아닐까. 관리직들도, 남성 사원들도 육아와 일을 병행하는 게 어떤 일인지 제대로 인지하는 게 먼저 아닐까. 


  내가 다니는 회사는 육아 휴직 3년에 아이가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단축근무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이는 여성 사원에게만 주어지는 혜택이 아니다. 하지만 남성사원이 이 제도를 이용하는 모습은 그다지 보이지 않는다. 


  세상은 나아지고 있다고 "팩트풀니스"는 말하지만, 여전히 아쉬움이 많이 남는 세미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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