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에 익숙한 내가 더 두려워지는 저녁

낙서재 산문 / 시 선의 시선

by 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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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낱말 : '용기'


"사랑은 언제나 진실하였으나,
두려움에 익숙한 내가 더 두려워지는 저녁"

『폭풍의 언덕』기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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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기 때문에,

오늘 밤에도 비가 그치지 않아도, 서로의 단점만을 가르쳐주며 살아가도, 기억이 절망과 같아도, 물방울을 세다 말아도, 마른 손이 목을 졸라도. 두려운 저녁의 침묵을 깨고 아침에 입을 벌려 용기를 토해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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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형도의 시를 읽었다. 대대적인 리노베이션을 거쳐 환기미술관이 재개관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재개관과 함께 걸리는 전시의 이름을 읽는다. 마우스 클릭 몇 번만으로 우연찮게 알게 된 것들이 나를 관통한다. 모니터에 띄워진 보고서 속 ‘클릭률’이라는 글자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저 클릭은 누군가의 마음을 움직였을까. 자신이 없다.




그럼 불확실한 미래를 두고 매 순간 선택하는 것은 권리인가. 예측만으로 하나의 선택을 취해야 하는 것은 의무인가. 다른 선택을 했다면 달라질 미래임을 알고도 예측하는 건, 용기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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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선택이 결단이란 말로 거창하게 포장되지 않아도, 선택의 매 순간이 씩씩할 수는 없었다고 해도 이미 미래를 끌어안았다. 누구를 위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존재하는 용기를 배추 속 채우듯 끼워 넣고.



침묵을 깨고 사회적 관계를 유지하는 아침.

사랑을 외면치 않고 파고드는 아침.

두려움에 익숙한 내가 더 두려웠던 저녁을 잊어버리고 깨어난 아 침.


나는 내가 오늘도 수많은 선택에 겹겹이 들러붙을 불안에 익숙지 않기를 바란다. 지난 저녁의 두려움에 오늘이 붕괴되지 않기를 바란다. 어차피 불확실한 미래는 누구에게나 똑같이 훼방을 놓고 있는 중이니.


이런 용기 있는 아침은 잊힐 수 있으니 적어놓기로 한다. 십이월이 가기 전에 환기미술관에 가기로 적어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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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향과 즉흥적인 독서와

언뜻언뜻 머리를 쳐드는 지혜와

섬세한 미래를 껴안고

사방에서 떠드는 것들에 엿을 날려줄

두 에디터의 사유의 서재


낙서재 놀러 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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