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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경호 Feb 09. 2024

김을 모락모락 내며
뜨거운 아침식사

[마흔네살 일기장] 목심등뼈 김치찜 먹은 이야기


어느 순간부터 아침에 가족들이 함께 모여 식사를 한다는 게 무척 귀한 일이라는 걸 깨닫게 된다. 이 아무것도 아닌 당연한 일들은, 가족 구성원 중 누군가 죽거나 다치거나 아프지 않아야 하며, 가족 간의 관계가 입맛을 잃지 않을 정도로, 밥맛을 해치지 않을 정도로 나쁘지 않아야 비로소 가능하다. 


그리고 아침에 식사를 차려 먹을 정도로 삶이 전날부터 계획적이고 부지런해야 하며 크고 작은 사정과 환경이 안정적이어야 한다. 그렇게 가족과 함께 모여 아침식사를 한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그 사람의 환경과 일상의 많은 것을 가늠할 수 있다.


인간은 필멸자로 반드시 죽거나 헤어지게 설계되어 있다. 만나는 순간부터 관계는 서서히 멀어지고 헤어져 가는데 다만 자각하지 못할 뿐. 이런 와중에 함께 모여 김을 모락모락 내며 뜨거운 아침식사를 함께 한다니 이 얼마나 신기하고 재미난 일인가? 그래서 가족을 표현할 수 있는 수많은 멋진 말이 있음에도 단촐히 '먹을 식, 입 구' 라는 말로 부르는 걸까? 식구. 내가 아는 가장 멋진 말 중 하나다.


그래서 나는 집에서 밥을 먹을 때마다 항상 소리를 내어 "잘 먹었다. 감사하다"라고 고마움을 늘 어무이에게 전한다. 심지어 집에 안 계실 때도 허공에 대고. 그러다 결국 집에서 마주치게 되면 "그 음식 맛있었어요"라고 반드시 눈을 마주하고 이야기를 한다. 나는 이런 부분에서 아주 집요하다. 그 날 먹은 음식의 소회와 감사함을 어머니에게 전달하는 건 나의 중요한 일과 중 하나다. 적어도 소중한 건 소중하게 대하며 사는 어른이 되고 싶다. 내 인생목표 중 하나다. 물론 잘 되지는 않겠지만.


오늘의 아침음식은 <목심등뼈 김치찜>이다. 나는 이런 메뉴를 들어본 적도, 먹어본 적도 없었는데 우리 어매는 어찌 알고 이런 음식을 만들어 주시는 걸까? 


다시마로 우린 물에 된장을 풀어 잡내를 잡는다. 외양은 뼈다귀 감자탕인데 향은 김치찌개가 나고 특유의 단내가 난다. 고추장을 넣은 김치찜을 푸욱 끓이면 설탕의 단맛이 아니라 고추장에서 깊은 단맛과 감칠맛이 우러나온다.


살짝 투명한 데 삘큰하게 익은 김치를 세로로 죽 찢어 밥숟갈 위에 얹어 한입씩 먹는다. 그리고 한번 씩 양념을 하지 않고 구운 먹먹한 김에 싸먹기도 한다. 구겨지고 부서지는 소리와 함께 감칠맛과 부드러운 매운 맛이 입안 곳곳 퍼져 나간다.


이때 밥은 새로 한 밥이 아니라 하루 지난 살짝 굳은 잡곡밥 정도가 좋다. 끈기와 찰기가 확실하게 남아 국물에 말아도 퍼지지 않을 정도로 식은밥. 푹 끓여 뜨거운 국물에 식은 밥이 맛있는 온도를 만들어낸다. 밥공기의 한쪽 귀퉁이를  비워 김치찜 국물과 등뼈에 붙은 두툼한 목심을 떼어 버무린 뒤, 한 숟갈 입에 넣으면 후르륵 소리가 절로 나온다. 후르륵 후르륵


영혼에도 귀퉁이가 있을 지 모르겠으나 한숟가락을 비울 때마다 안에 있는 날 선 모서리들이 하나 둘씩 사라지는 느낌이다. 이미 먹고 있는데 벌써 다음에도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맛있게 잘 먹었어요. 어머니"


[목심등뼈 김치찜. 이미 다 먹고 없어져서 Adobe firefly이로 제작한 이미지입니다. 처음 써봤는데 너무 훌륭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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