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네살 일기장] 일산시장 서강한의원
일산시장에는 침을 잘 놓기로 유명한 서강한의원이 있다. 동시에 침이 아프기로도 유명한데 이곳에는 고통을 고통으로 상쇄시키는 고명한 침술명의가 있다. 덕분에 이 한의원에는 진짜로 아픈 강한(?) 환자들만이 들어 올 수 있다. 환자들은 전부 황혼을 앞두고 있는 할아버지 할머니들 뿐이다.
"아 이 부위는 퍽퍽해서 침이 잘 안들어가는 부위인데..."
데친 소세지에서 날법한 뽀드득 소리를 내며,
침이 꽂힐 때마다 던지는 무심한 코멘트도 고통을 배가시킨다. 분명 입구로 들어갈때만 해도 한결 가벼운 몸으로 멀쩡히 걸어들어갔다가 나올 때는 오그라진 몸뚱아리로 절뚝거리며 나오기 일쑤이다. 이건 분명 없던 병도 생기는 느낌인데.
"왼쪽 발목은 침을 맞고 한결 좋아졌는데, 구를때 몸 여기저기가 놀랐는지 삭신이 좀 쑤시네요..."
"뭐? 삭신이 쑤셔? 그런 건 다 방법이 있지. 침을 온몸에 다 맞으면 돼!"
"???!!!!!!!!!"
원래 아픈 몸에 새로운 고통을 주입하고 자포자기 상태로 누워있는데 침 맞을 때 너무 긴장했는지 종아리 근육이 울끈불끈하며 쥐가 올라오려했다.
아 침 꽂힌 상태에서 이러면 무협지에 나오는 주화입마에 빠질텐데! 급하게 산모들의 라마즈 호흡법으로 운기조식을 시행한다. 호오 호우 호오
남자는 태어나 3번 운다는 시답잖은 말이 있다. 태어날 때 그리고... 아 몰라. 지금도 침 맞은 부위가 아파서 더 이상 쓰기도 귀찮다. 이곳은 침이 3번 아프다. 침이 들어갈 때, 침이 나올 때, 그리고 침을 빼고나서 계속.
오그라진 몸으로 절뚝 거리며 집으로 돌아오며 '다시는 안 올테다'라고 굳은 결심을 하지만 2주전에도 똑같은 말을 했던 기억이 난다. 어느 순간 나는 나를 믿지 않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침 맞고 하루 끙끙 앓고 나면 다음 날은 항상 몸이 좋아졌으니깐.
돌아오는 길이 마침 오일장날이었다. 얼마 전 어머니한테서 가마솥으로 돈까스를 바로 튀겨내주는 곳에 사람들이 항상 줄서있다는 말을 듣고 한번은 동생을 먹이려고 벼르고 있었다.
전통시장에선 여전히 할머니들이 줄을 서지 않고 새치기를 한다. 평소같으면 아이처럼 귀여운 할머님들의 모습에 넉넉한 웃음으로 "하하하. 할머님들 먼저 가져가세요"라고 할텐데 온몸이 아프니 참을성이 떨어져나간다.
"...주세요..."
새치기한 할머니들에게서 흉흉한 눈빛이 뿜어져나온다.
"...주세요... 저 할머니부터..."
나는 직감했다. 지금 내 몸뚱아리로는 할머니는 커녕 초등학생과 싸워도 질 거라는 것을. 그렇게 아픈 몸으로 한참을 기다려 돈까스가 담긴 봉다리를 들고 패잔병처럼 절뚝거리며 집으로 돌아왔는데
여느 집 레파토리도 마찬가지겠지만 생각해서 힘들게 가져왔는데, 이 놈의 여동생이 돈까스를 몇점 먹지도 않는다. 진짜 빡이 쳤지만 나는 직감했다.
지금 싸워도 동생한테 질 거라는 걸. 나는 암소리도 못하고 시름시름 앓는 소리를 내며 이부자리에 모로 눕는다.
*한줄요약 : 침 맞고 돌아오는 길에 돈까스를 사와 동생에게 먹인 이야기, 아닌 동생이 먹지 않은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