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네살 일기장] 아무도 대신 해주지 않습니다. 별 게 없습니다.
한동안 너무 추워서 였을까요? 모두들 떠나고 텅빈 호수와 동네를 오늘도 여전히 아픈 동생과 둘이 잘 지키고 있습니다. 그저 매일 해오던 일을 반복합니다. 걷고 또 걷고. 그저 다들 춥지 않게 너무 외롭지 않게 지내길 바랄 뿐입니다. 저는 괜찮습니다. 저는 아무렇지 않습니다.
한해동안 친구와 이웃들이 남기고 간 온기와 애정이 저에게는 그득합니다. 반갑고 살가운 얼굴들이 곁에 없어도 이제는 쉽게 떠올리고 쉽게 상상할 수 있습니다. 혼자여도 혼자서 키득키득 웃을 수 있는 나이가 되었습니다. 모두 덕분입니다.
이럴 때마다 사랑한다는 말이 쉽게 읊조려집니다. 그래서 누가 옆에 있으나 없으나, 서로 보고 있지 않아도, 더 이상 보고 싶지 않더라도, 설령 서로를 잊더라도 오늘 내가 해야할 일을 합니다. 매번 쉽지 않고 또 매번 익숙해지진 않지만.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어느 누구도 대신 할 수 없습니다. 해가 하는 일이 그렇고 달이 하는 일이 그렇습니다. 비와 눈이 하는 일도, 땅과 하늘의 일도 이와 같습니다. 덥고 춥고 따뜻하고 선선한 이 모든 일들이 마찬가지입니다. 저마다 해야할 일을 매일매일 해내고야 맙니다.
세를 불리고 연대를 할 생각 이전에, 저마다 해야할 마땅한 일들을 해야합니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귀찮으나 힘이 들고 고통스러우나 상관없이 매일매일 마땅하고 당연한 일들을, 자연처럼 해내야 합니다.
다 떠나고 혼자 남아도 세찬바람을 맞는 말뚝처럼 마땅한 일들을 해내야 합니다. 위대한 자연의 일도 별 게 없습니다. 그러니 사람의 일도 별 수 없습니다. 별 게 없습니다. 별 수 없습니다. 그저 해야할 일을 제가끔 할 뿐입니다. 오늘도 내일도 그저 그럴만한 짓을 합니다. 자연처럼, 별 게 아닌 것처럼 묵묵히 자기가 해야할 일들을 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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