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도서] 김종철 선생님의 녹색평론 서문집 '비판적 상상력을 위여여'
우리의 서양 콤플렉스와 강자숭배주의가 얼마나 기막힌 수준까지 와 있는가는 네팔여성 찬드라 꾸마리 구릉이 겪은 참혹한 이야기에서 선명하게 볼 수 있다. 외국인 노동자 신분으로 일하던 찬드라 구릉이 어느 일요일 서울의 한 음식점에서 밥을 먹고 돈을 내지 못했다는 죄 때문에 경찰에 연행된 것 까지는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행색이 남루하고, 경찰이 알아들을 수 없는 괴상한 말을 한다는 이유로 주거불명의 정신병자로 오인되고, 그 후 6년 반 동안 정신병자 취급을 받으며 정신병원에서 갇혀 지냈다는 것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 그런 일이 일어났던 것이다.
아마 찬드라 구릉이 영어를 말하는 사람이었다면 그렇게 터무니없이 정신병자 취급을 받지는 않았을 게 틀림없다. 우리가 찬드라의 이야기에서 큰 절망을 느끼는 것은 설령 경찰이나 정신병원에서 시초에 본의 아닌 오인이 있을 수 있었다 하더라도 시간이 경과하면서 이 여성이 적어도 외국인이라는 사실은 밝혀졌을 것인데 어떻게 그렇게 오래 방치될 수 있었는가 하는 점 때문이다.
실제로, 찬드라가 수용되어 있던 병원 쪽에서는 얼마 있지 않아 이 여성이 외국인이라는 사실을 인지하였고, 그래서 법무부 출입국관리소에 문의를 하였다고 한다. 그런데 병원에서 잘못 파악된 이름 -찬드라 고름-이 법무부에 비치되어 있는 외국인 노동자 명부에 보이지 않는다는 컴퓨터 조회의 결과 때문에 다시 몇 년을 허무하게 정신병원에 갇혀 지낼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찬드라 고름'이 '찬드라 구릉'을 잘못 발음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약간의 섬세한 배려만 이었던들 이 여성과 딸의 행방을 몰라 애태우던 네팔의 가족들의 비극을 좀더 일찍 마감될 수 있었을 것 아닌가.
야만주의는 차별을 바탕으로 출발하고, 차별은 타자를 절대적인 인격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상상력의 결핍으로 일어난다. 그리고 이러한 상상력의 결핍은 개인적인 자질 이전에 우리 각자가 그 구성원으로 참여하고 있는 문화공동체의 성격에 결정적으로 기인한다.
영어가 아닌 다른 변방의 외국어를 하기 때문에, 행색이 초라하다는 이유 때문에 함부로 인간을 재단하고, 정신병원에 6년 반이나 방치해 둘 수 있다는 것은, 뒤집어서 볼 때, 멀쩡한 단일 겨레말의 존재에도 불구하고 영어공용화가 외쳐지고, 영어를 위해서라면 아이들의 혀를 수술하는 데도 망설임이 없는 사회에서만 가능한 일인지 모른다.
우리는 지금 투쟁적인 열기와 공격적인 자기주장이 넘쳐흐르는 분위기속에서 살고 있다. 찬드라 구릉의 일화는 꼭 외국인에 국한되는 이야기라고 할 수도 없다. 찬드라 구릉은 지금 이 사회에서 천대받고 있는 모든 사회적 약자의 다른 이름일뿐이다.
공동체는 공허한 수사로 지켜질 수 있는 게 아니다. 더 크고, 더 높고, 더 많은 것을 맹목적으로 추구하면서 남들보다 앞서고자 하는 뿌리깊은 욕망의 구조, 그리고 그것과 결합하여 끝없는 성장, 팽창을 되출이함으로써만 비로소 유지될 수 있는 경제시스템, 거기에 매달려 잇는 소비주의 생활방식- 여기에 대한 총체적이고 근본적인 방향전환을 시도하지 않는 한 공동체 운운은 한갓 말장난에 지나지 않는다.
(제65호, 2002년 7~8월 녹색평론 서문집' 비판적 상상력을 위하여' 고 김종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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