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편이 안되서, 어딘가에 번듯하게 자랑할만한 성취를 이루지 못하여 고향으로 그리고 집으로 돌아갈 수 없는 청년들, 돌아가고 싶어도 돌아갈 곳이 없는 사람들까지, 명절은 평소 멀쩡하던 사람들도 유독 헛헛하게 만드는 묘한 감정을 불러 일으킨다.
기쁘고 즐겁고 충만해야 할 명절날들이 누군가에게는 자신에게 무엇이 없는지, 자신의 형편이 어떤지를 상기시켜주는 날이 되기도 한다. 돈이 없는 나, 취업을 하지 못한 나, 시험에 붙지 못한 나, 아프고 힘든 가족을 차마 볼 수 없는 나, 돌아갈 곳이 없는 나, 그리고 가족이라 부를 수 있는 사람이 더 이상 없는 나 등등
수없이 많은 나와, 내 안의 주체할 수 없는 나를 끄집어 들고 명절날 어울리지 않는 음악과 옷으로 새벽을 가득 채운다. 많은 것을 술과 춤으로 하루 만에 잊어야 하는 젊음들을 위로하며 함께 진탕 놀고, 나는 새벽에 집에 기어들어와 씻고 경건하게 차례상을 차리며 아침에 찾아온 조상님께 제를 드리며 예를 다 한다.
그러면 온가족이 역시 우리 장손 이러면서 칭찬과 세뱃돈을 주셨다. 나는 부끄럽고 인자한 미소로 그걸 받고 속으로는 지난 저녁의 방탕함을 떠올리며 엄청 큰 유희열을 느낀 지 어느 덧 15년차.
명절날 홍대 클럽. 명절이 우리나라 사람이야 명절이지 외국사람들에게는 말 그대로 이게 웬 휴일!
나는 바란다. 춤 바람이 난 종갓집 며느리가 식구들에게 들키지 않은 채 밖에서 춤도 추고 또 다른 사랑도 찾고 동시에 집안의 크고 작은 일도 잘 꾸려나가 모두가 해피한 상황을 상상을 바란다.
(결국 종갓집 며느리가 곳간을 독식하는 그 날이 오길!)
요즘에는 무슨 성기사 같은, 현자타임 같은 무미건조한 상태가 지속되어 내 안의 흑과 백이 둘 다 즐거운 그런 낙이 없음에 절로 한탄이 새어나온다.
결혼도 못하고 아이도 없고 변변한 성취와 명예도, 사랑도 없는 난, 해가 거듭될 수록 애석하게, 전 부치는 실력만 늘어가는데...
숙취를 이겨내며 20년 넘게 부친 전, 명절하면 제사나 전이 아니라 클럽이 먼저 떠오른다. 명절 클럽이 워낙 재밌으니깐
전날 숙취가 깨지 않은 상태에서 노릇노릇 익혀진 전을 뒤집을 때 마다, 마음속으로는 술병을 이고 지붕 위에 올라가 거나하게 취해 입이 삐뚤어지게 온갖 욕을 퍼붓는 장승업이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