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를 마시는 동안 #5, 박자를 되찾는다

가끔은 도시의 속도가 버거운 당신에게

by 코쿠


손끝이 먼저 움직이던 일상적인 일들에

요즘은 자꾸 멈칫거리게 된다.

배가 고파도 몸이 쉽게 따라주지 않고,

해야 할 일은 산더미인데

어딘가로 숨고 싶다는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한동안 가만히 누워 있다 보면

어느새 잠이 스르르 따라온다.

불면증이 고질처럼 달라붙어 있던 때를 떠올리면

요즘 이렇게 깊이 잠들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몸이 정도를 넘게 지쳐 있다는 걸 알게 된다.


긴장이 들어앉는 자리는 대체로 비슷하다.

목은 뻣뻣해지고,

머리는 지끈지끈 울린다.

어깨 움직임도 묘하게 뻐근해지고,

겉으론 멀쩡해 보여도

근육은 이미 경계태세에 들어가 있다.

불편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몸은 이미 알고 있었던 모양이다.


가끔은 쉬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감각이 몰려올 때가 있다.

그럴 땐 재빨리 노트북을 덮고,

따뜻한 물 한 잔을 마시며

목과 어깨를 천천히 늘려준다.

정신과 육체의 회로가 동시에 과부하에 걸리는 순간이다.


일이 잘 풀릴 땐 도시의 속도가 오히려 힘이 된다.

몰입이라는 이름으로,

앞서간다는 착각으로 버텨낼 수 있다.

하지만 하루하루가 뒤엉켜버릴 땐

도시 전체가 나를 밀어내는 것 같다.

그럴 땐 아무도 시키지 않았지만

혼자 속도를 잃고, 마음도 따라 무너진다.


“내가 평생 이렇게 살 수 있을까?”

그런 문장에 도달했던 날이 있다.

저절로 도리도리를 하며

스르륵 찻잔을 꺼냈던 오후였다.


찻잎을 덜고, 물을 데우고,

다관을 따뜻하게 데우는 동안 손을 멈춘다.

그 시간에는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다.

서두른다고 향이 빨리 우러나는 것도 아니고,

조급해진다고 맛이 진해지는 것도 아니다.


몸이 저절로 느려진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해야 할 일이 머릿속을 맴돌았는데,

물이 잎을 감싸고

김이 피어오르는 그 순간만큼은

굳이 다음을 서두르지 않아도 된다는 걸 안다.


찻물이 우러나는 걸 바라보다 보면

심장 박동도 천천히 늦춰진다.

호흡도, 시선도, 생각도

차의 속도를 닮아간다.


그렇게 한 잔을 마시고 나면

머릿속이 조금은 비워진다.

크게 달라지는 건 없지만

드디어 내 리듬을 찾게 된 느낌이랄까.


도시가 요구하는 속도가 아니라,

내가 살아낼 수 있는 속도.

타인의 페이스가 아니라,

내가 선택할 수 있는 박자.


찻잎은 제 속도로 우러나고,

그걸 바라보는 내 마음도

찻주전자에 잠시 기대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