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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르는 굼벵이 Nov 12. 2022

갑작스레 빗속을 뛰는 게 즐거웠다

큰 재미가 물방울 된 오늘

북한산 둘레길을 걸어보자, 마음을 먹고 남편과 길을 나섰다. 이사 오고나서부터 가보자고 했던 길. 중랑천을 지나 단풍이 쌓인 길로 들어간다. 그런데 어머, 비가 몇 방울 씩 떨어진다. 사실 오는 길에 하천에서 한 두 방울 맞긴 했는데 설마, 하고 외면했다. 지금은 외면하긴 어렵게 내린다. 그래도 돌아가기 아쉽다. 많이 올 것 같지 않은데.. 우리 둘은 같은 마음으로 그냥 앞으로 앞으로.


그런데, 더 이상 무시할 수 없을 걸, 하듯 비가 내리기 시작. 휴대폰으로 날씨를 확인해보니 밤까지 비다. 돌아가자, 발길을 돌리는 데 비가 점점 거세진다. 무시할 땐 언제고 걸음이 빨라진다. 빗줄기가 촘촘해질수록 빨라지는 발걸음.

그러다 빗줄기가 따가워 내가 뛰어가니 남편이 혼자만 살겠다는 거냐며 따라온다. 조금 뛰다가 포기하고 걷는 나. 이번엔 남편이 내 머리카락이 더 빠질 거라고 놀리며 뛰기 시작. 난 괜찮다고 하며 걷는다.

커피 마시고 좀 기다렸다 갈까, 남편의 제안. 그러다 더 오면 힘들어질 것 같은데. 계속 걷는 우리. 집 중간쯤 왔을 때 가게에서 비닐우산을 하나 샀다. 겉옷은 대강 젖었지만 발걸음이 느긋해졌다.


노원에 살 때 산책 나갔다가 소나기 와서 한참 비 안 맞는 곳에 서있다 오기도 했는데, 비 오니까 공기는 좋겠다, 비 오고 나면 추워질 것 같아, 여기 단풍나무가 진짜 예쁘다, 비 오니까 저녁에 매콤한 주꾸미 볶음 먹을까, 이야기를 나누며 걷는 길. 즐겁다.

두고두고 웃음으로 기억날 것 같아. 이런 날이 행복으로 아주 나중에도 남아있겠지. 갑자기 내린 비에 갑자기 재밌었던, 도란도란한 오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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