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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르는 굼벵이 Dec 21. 2022

차가운 바람에 때때로 묻어있는 슬픔

마트 다녀오는 길이 슬펐던 오늘

차가운 공기에는 때때로 슬픔이 묻어있다. 낮게 가라앉은 무거운 찬 바람에는, 같은 무게를 가진 슬픔이 얹어질 때가 있다.


오후, 혼자 마트에 다녀왔다. 날이 추워지면서 그런 것 같은데, 요즘은 동네 작은 마트에 평소보다 사람이 많다. 사람이 많으면 더 활기가 있어야겠지만, 사람 없던 가을보다 활기가 없다. 춥지는 않지만 따뜻하지도 않은 실내는, 장을 보는 사람들이 밖에서 묻혀온 찬바람 때문인지 무겁고 차갑다. 겨울 노래를 크게 틀어 놓았지만 어색하게 겉도는 느낌.


필요한 것을 사러 매대를 돌아다니며 마주친 사람들은 바람과 함께 슬픔이 묻어있는 것 같았다. 엄마를 따라온, 가방을 메고 있는 아이들은 맛있는 걸 고르려는 아이다운 즐거움보다는 가방 속 공부에 지치고 지루한 모습이었다. 뭐가 더 좋을지 이것저것 살펴보고 있는 모녀의 모습에서 장보기의 즐거움보다는 삶의 고단함이 느껴졌다. 여기저기, 찬바람 묻은 점퍼를 입은 사람들 주변으로 무겁고 차가운 기운이 흐르고 있었다.


나는 갑자기, 그동안 겨울이면 느껴왔던 쓸쓸함이 한꺼번에 쏟아져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그래서 서둘러 장보기를 마친 후 사람들과 마주치지 않도록 애쓰며 마트를 나왔다. 내가 처음 찬 바람의 쓸쓸함을 느낀 것은 초등학교 때였는데, 그때의 감정은 외로운 쓸쓸함이 아니라 당시의 상황에서 비롯한 슬픈 쓸쓸함이었으므로, 나는 그때의 바람 냄새와 그때의 쓸쓸함을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그리고 어렸을 때 그런 감정을 느낄 만큼 감정과 감성의 바탕에 쓸쓸함이 품어져 있는 나는, 종종 찬 바람에 묻어있는 슬픔을 본다. 내가 보는 풍경에 있는 사람들이 찬 바람 속에서도 춥지 않면 좋겠고, 따뜻하고 훈훈한 집에서 편안한 시간을 보내면 좋겠다. 내 시선 속 사람들이 춥지 않으면, 바람이 차가워도 슬픔은 묻지 않을 것 같다. 여름보다 겨울을 좋아하지만 무거운 쓸쓸함 까지는 어떻게 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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