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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고했다'라는 말

마음이 뭉클해진 오늘

by 구르는 굼벵이

엘리베이터를 탔다. 마트에 다녀오는 길.

할아버지와 아이들이 오고 있어 열림버튼을 눌러주고 모두 함께 탑승. 태권도 도복을 입고 있는 아이들이 나에게는 "고맙습니다" 할아버지에게는 "안녕하세요" 인사한다. 모두 각기 다른 층 버튼을 누른다.


할아버지는 아이들을 보더니 "띠 새로 땄구나"하고 아이들은 "지난달에 땄어요"대답. 잘 아는 사이인가 보다 하는데 할아버지가 이어 "힘들었을 텐데 수고했다"하신다. '수고했다'라는 말에 갑자기 마음이 쿵. 곧 엘리베이터에서 내렸으나 마음이 뭉클뭉클 눈물이 맺힐 것 같아 얼른 집에 들어갔다.


아이들에게 '수고'라는 단어는 잘 쓰지 않는 것 같은데. "수고했다"라는 말을 들은 아이들은 띠를 새로 따기 위한 모든 수고가 사라지는 것 같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감사합니다"라는 대답에 '수고'라는 무게는 느껴지지 않았지만, 초등학교 3, 4학년 정도 되는 아이들은 수고의 무게를 몰라야 하지 않을까.


그런데 왜 난 그 말에 마음이 쿵 했을까. 지금 흔하게 듣는 말인데. 궁금해 곰곰이 생각해 보니 아까의 아이들처럼 어릴 때 듣지 못한 말이어서 그런 것 같기도. 그러나 그때 너무 필요했던 말이어서 그랬던 게 아니었을까.


나는 어려서 수고를 많이 했다. 집에서. 온 가족이 화목하지 못하여 조마조마 눈치를 살피고 주변을 챙기고. 그러나 그때는 수고한다는 말을 듣지 못했다. 수고를 제대로 충분히 인정받지 못했다. 그래서 아이들을 향한 그 말에 마음이 반응했던 것 같다. 수고한다는 말을 듣고 싶어 하는 어린 내가 보인 반응. 그래서 새삼 이제야, 어릴 때 나의 수고를 가장 잘 아는 내가 어릴 때의 나에게, 힘들었을 텐데 수고 많았다는 말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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