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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과 싸우는 중

이겨볼까 하는 마음을 얻다.

by 구르는 굼벵이

일이(정리수납) 오전에만 있었다. 일을 마치고 나오니 1시. 머리 꼭대기에서 태양이 활활. 15분 정도 걸어 지하철역으로(선크림도 안 바르고 나왔는데).


오늘 일 한 곳은 멀지 않아 이동시간이 짧았다. 일도 무난했다. 그런데 지하철 에스컬레이터를 타면서 문득, 우울의 바다에 가라앉고 있구나 느꼈다. 갑자기. 당혹.


이유가 뭘까 열심히 생각하다 알았다. 여름이구나. 태양이 높고 해가 쨍할수로 나는, 어두운 심연에 빠진다. 여름이 깊어질수록 더 깊이 잠수. 이 계절이 무섭다. 여름은, 덥고 힘들고 지치고, 그래서 아팠던 계절. 타는 공기, 찌는 공기에 노출된 사람들. 아픈 계절.


여름을 이긴 적도 있었다. 너무 더운 곳에서 일했을 때. 밖의 더위가 무섭지 않았다. 빵집 오븐파트에서 여름을 보냈을 때. 나 하나 지나가는 통로를 두고 양쪽에 몇 백도까지 오르는 오븐이 두어 개씩.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땀을 한 세 번은 쏟고 나서야 일이 끝났다. 그때는 밖의 태양이 가벼웠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다시 여름이 무서워졌다. 에어컨 돌아가는 소리는 산만하고 부담스럽다.


지하철에서 내려 다시 10분 정도 걸어 집에 왔다. 1층 엘리베이터 앞에 청소하시는 여사님이 물걸레로 바닥을 닦고 계신다.


"안녕하세요"하니 "덥죠~"하신다. "너~무 뜨거워요!" 진심을 담아 하소연. "정말 덥네요~" 엘리베이터를 타고 "감사합니다." 인사. 그런데 왜 마음이 좋아지지? 기분이 왜 좋아질까. 또 갑자기.


태양이 밀어 넣은 우울의 심연에서 가볍게 꺼내진 것 같은 기분. "덥죠~"한 마디가 부드럽게 나를 물밑으로 밀어 올려준 건가. 덥게, 태양을 정통으로 맞으며 집에 오는 길이 힘들었음을 알아주는 것같이 느껴져서.


아는 사람들, 자주 만나는 사람들과의 대화는 힘든데 잘 모르는 분과의 대화는 편하고 좋다. 나중에 책 잡히거나 흉이 되거나 그럴 일이 없다고 여겨지기 때문일까. 아무튼 다시 밝게. 여름을 이겨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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