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병원 가는 길은 즐거워
1년에 한 번 서울 병원에 가는 날이 되었다. CT와 초음파 검사, 채혈, 그리고 진료까지. 일주일 간격으로 이어지는 일정이라 검사 날에는 오전 반차만 내고 다녀왔다.
춘천에서 새벽 6시에 출발하는 ITX-청춘 첫 차를 탔다. 딱 하루, 하필이면 그 1년에 한 번 있는 병원 가는 날에 버스 파업이었다. 택시는 잡히지 않고, 버스도 없어서 청량리역에서 병원까지 40분을 걸어갔다. 버스 파업인 줄 알았다면 지하철을 탔을 텐데, ‘걷다가 택시 잡히겠지’ 하며 지하철을 타지 않은 게 두고두고 후회되는 하루였다.
그날은 새벽 5시에 몰래, 최대한 조용히 나온다고 나왔는데 아이가 깨버렸다. 두 시간 넘게 울며 잠들지 못했고, 결국 남편도 함께 고생을 했다고 했다. 울면서 영상통화로 아이 얼굴을 보는데, 마음이 얼마나 쓰이던지. 다음 주 진료 날에는 같이 오자고, 그 자리에서 덜컥 약속을 해버렸다.
그리고 진료 보는 날.
연차를 내고 아이도 어린이집을 빼서 함께 병원에 다녀왔다. 지금 와서 말하지만, 그 선택을 백 번은 넘게 후회한 것 같다.
기차에서는 계속해서 “조용히 해”, “조용히 말해”를 반복했고, 간식을 수시로 투입하며 겨우 도착했다. 청량리역에 내리자마자 한파주의보가 뜬 날이었다. 그런데 아이는 보자마자 없는 2층 버스를 타고 싶다, 서울 전기버스를 타고 싶다며 보채기 시작했다.
병원에 도착해서도
“엄마 무서워, 병원 싫어.”“너 병원 아니야. 엄마 병원이야.”
진료를 마치고 나와서도 버스를 타겠다, 지하철을 타겠다, 청량리역에 와서는 장난감을 사달라, 아이스크림이 먹고 싶다, 도넛이 먹고 싶다. 잠깐이라도 기차 시간을 보려고 시선을 떼면 어디론가 사라질 것만 같았다. 눈 뜨고도 코 베어 간다는 서울에서 아이를 잃어버릴까 하루 종일 긴장을 놓을 수 없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몸이 풀린 건지, 저녁 9시도 되기 전에 그대로 잠들어버렸다.
다음 날이 되어서야 겨우 정상적인 사고가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러다 문득 엄마 생각이 났고, 병원에 다니던 어린 시절의 내가 떠올랐다.
90년대, 춘천에서 성북역으로 가는 통일호를 타고, 성북역에서 다시 지하철을 갈아타고 한 시간을 더 가야 도착하던 병원. 초등학교 1학년 때 수술을 하고, 가끔 서울 병원에 가던 날들은 이상하게도 내 기억 속에서 늘 행복했다.
맛있는 것도 먹고, 서울에 사시던 큰아빠가 장난감을 사주시기도 했고, 학교를 빠질 수 있었고, 성북역에서 먹던 우동은 유난히 맛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내가 되어 생각해 보니, 그 시간이 엄마에게는 결코 가볍지 않았을 거라는 걸 알겠다. 나와 비슷한 나이에, 초등학교 저학년이던 나와 지금 내 아이보다도 어렸을 동생까지 챙겨서 왕복 다섯 시간이나 걸리는 병원을 다녀오는 일.
나는 서른여섯이 된 지금도 아직 어린것 같은데, 엄마는 그 나이에 아이 둘을 키우며 일도 하고, 아이는 또 아프고. 얼마나 힘들었을까.
한 달 전, 남편과 다툴 때 사위가 불쌍하다는 엄마에게 사위 편만 든다며 짜증을 냈던 말들이 오늘따라 유난히 후회되는 저녁이다.
갑자기 밀려온 후회와 오래된 기억들 속에서, 오늘도 이렇게 글을 쓴다.
승강장에서 먹는 우동이 다시 먹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