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살에 암에 걸리고, 30년이 지났다.

06. 롤러코스터는 무섭지 않아 – 인생의 전환점

by 나리


어릴 적에는 내가 암 환자라는 사실조차 몰랐다.

부모님이 모든 걸 다 해주셨기에 그 심각성을 느끼지도 못했다.


하지만 성인이 되고 나니, 폐 전이는 너무도 무섭게 느껴졌다.

그런 와중에도 부모님께 미안한 마음이 더 컸다.

치료도 받아야 하고, 회사를 쉬어야 했는데,

부모님은 내게 부담감을 주신적이 없지만, 매년 돈을 얼마씩 모아 빨리 빚을 갚고 싶었던 내 계획이 무너지니 짜증도 많이 났다.


그래서 동위원소 치료를 받고 한두 달 쉬기로 하고, 다시 일하기로 결정했다.

그런데, 또 안 좋은 일이 겹쳤다.


이모가 갑자기 돌아가셨다.

그 세면대 사건의 친척 오빠의 어머니이자, 우리 엄마의 언니이신 이모였다.

고3 딸과 함께 자고 계시던 중, 조용히 세상을 떠나셨다.


그 소식을 듣고 너무 놀라고 슬퍼서 울면서 당시 파트장님께 전화를 걸었다.

그런데 돌아온 말은, “그래서 어쩌라고?”

그 목소리에 담긴 짜증스러움에 나는 너무 당황했다.

결국 그는 다시 전화해 “퇴근하고 가도 된다”라고 했지만,

이미 나는 너무 많은 걸 느꼈다.


기숙사로 돌아가 유니폼을 벗고 씻으면서, 수많은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나는 이 지옥 같은 회사,

사람들 때문에 스트레스 받아서 암이 폐로 전이됐는데…

그런 와중에도 여름 시즌을 끝내고 치료하려고 했는데…

이모가 갑자기 돌아가셨는데도, 나는 이 대접을 받는구나.”




그때 마음속에 확실한 결심이 생겼다.

‘내일 지구가 멸망한다면, 나는 오늘 어떻게 살아야 할까?’

그 질문에 답하듯, 이렇게 생각이 들었다.


‘이건 그만둬야 해.’


장례를 치르고 돌아와 퇴사를 말했을 때,

파트장님은 “일한다며, 왜?”라며 또 그런 반응을 보였다.

그 순간 더욱 확신했다.


'날 이렇게 함부로 대하는 사람들 속에

내가 나를 돌보지 않고 두는 건 옳지 않아.’




렇게 나는 23살에 첫 직장을 그만두고, 방사선 치료를 받았다.


2년간 일하면서 모은 2천만 원으로 엄마의 새로운 수선집 보증금을 마련해드렸고,

퇴직금으로는 동생에게 새 컴퓨터도 사줬다.


인생을 새롭게 시작하는 기분이었다.

홀가분했고, 뿌듯하기도 했다.


그리고 24살.

나는 처음으로 카페 아르바이트를 시작했고,

그곳에서 지금의 남편을 만나게 되었다.




돌이켜보면, 모든 건 운명이었다.

그리고 나는, 운이 정말 좋다.


너무 어린 나이에 암 환자가 되었지만

그래서 매년 건강검진을 받을 수 있었고,

위험한 순간을 늦게 알지 않고 일찍 발견할 수 있었다.


공부를 못해서 실업계 고등학교에 갔지만,

장학금도 받고, 재밌게 학교생활을 했다.


23살 어린 나이에 암이 폐까지 전이됐지만,

심한 고통도 없었고 두 번의 방사선 치료로 좋은 결과가 있었으며

중증환자로 등록되어 검사비도 저렴해졌다.


그리고 무엇보다,

전이가 되지 않았다면,

그 지옥 같던 곳에서 아직도 내 몸과 마음을 갉아먹고 있었을 것이다.


지금의 남편도, 아이도 만나지 못했을 거다.


정말, 지금 생각해 보면

나는 운이 좋았다.


사람은 안 좋은 일이 있으면,

반드시 좋은 일이 찾아오는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이제,

내리막길이 무섭지 않다.



춘천에는 레고랜드가 있다. 어린이 중심의 테마파크이다 보니 스릴 넘치는 어트랙션은 없지만, 이 드래곤코스터는 좀 재밌다. 역시 롤코는 재밌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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