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살에 암에 걸리고, 30년이 지났다.

07. 청춘을 함께하고 인생도 함께하는 중

by 나리

폐전이로 회사를 그만두고 첫 번째 방사선 치료를 했다.
어릴 때보다 훨씬 고용량으로 진행해서 그런지 속도 안 좋고, 몸은 부어서 힘들었다.
치료를 연달아 할 수 없어 경과를 지켜본 뒤 두 번째 치료를 앞두고 있던 시기, 나는 카페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교육을 받던 첫날, 갓 전역한 젊은 남학생이 일을 알려주었다.
그동안 능구렁이 같은 나이 많은 남자들과 일하다 보니, 남자라면 질색하던 나였다.
그런데 순수함이 묻어나는 그 학생이 얼마나 신선하게 다가왔는지 모른다.
교육이 끝난 뒤에도 우리는 늦게까지 얘기하며 카페에 남아 있었다.


얼마 후 단톡방에서 이야기를 하다가 번호를 묻고 영화 약속까지 잡게 되었고

그리고 그날, 그는 수줍게 고백했다.
“나… 누나가 조하.”
순수함 그 자체였다.


그렇게 내 나이 24살, 남편 23살. 청춘의 연애가 시작되었다.
시간은 금방 흘러 1년, 2년, 5년, 그리고 결혼까지 이어졌다.


내 병력을 다 이야기하고 사귀기 시작했기에, 사귄 지 얼마 안 되어 나는 두 번째 방사선 치료를 받아야 했다.
저요오드식 때문에 아무거나 먹지 못하던 나에게 그는 직접 아몬드를 갈아 우유를 만들어주었다.


지난 치료 때 속 울렁거림으로 밥을 먹지 못했다고 말하니 일부러 입원하는 날 계란이 들어가지 않는 빵집을 수소문하여 사다 주기도 했다.

그런 세심한 정성이 내 마음을 단단히 붙잡았다.

친구들을 만나기 좋아하던 사람이었지만, 그 시절엔 온 신경을 나에게 쏟아주었다.
그가 거짓말을 하면서까지 나와 시간을 보내려 했던 걸, 그땐 미처 다 알지 못했다.


10년이 흐른 지금, 나도 아줌마가 되어 성격도 외모도 많이 변했다.
남편도 예전처럼 모든 걸 나만 바라보는 연애 시절의 모습과는 조금 달라졌다.
그래서 가끔은 그때처럼 맹목적으로 나를 사랑해 주던 남편이 그립기도 하다.

하지만 여전히, 그가 나의 유일한 사람이라는 사실은 변함없다.
속을 잘 드러내지 않는 내가 모든 걸 보여줄 수 있는 단 한 사람.
“이 사람이라면 평생을 웃으면서 살 수 있겠다”는 믿음이 있다.

건강하게 웃으며, 남편과 오래도록 함께 늙어가고 싶다.



동위원소 방사선 치료전에는 저요오드식으로 식단을 먹어야 한다. 10년 전에도 이런 저요오드 고추장, 된장을 구매해서 요리를 해먹었는데 생각보다 맛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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