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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개 Oct 26. 2022

이 세상의 모든 겁돌이와 겁돌이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Prologue



  겁돌이는 내가 어릴 적, 집주인 아저씨가 시장에서 5천 원 주고 데려오신 똥강아지였다. 

  코 주변 털은 조금 검어서 군고구마라도 훔쳐 먹은 것 같았고 전체적으로 누런 털을 가진 겁돌이는 천방지축 강아지 시절부터 나의 첫 동물 친구가 되어주었다. 

  내가 살던 집은 단독 주택이었고 우리 가족은 2층에 세 들어 살고 있었는데, 신발을 현관문 앞에 벗어두고 들어오게 되어있었다. 밤만 되면 현관문 앞에 옹기종기 늘어서 있는 신발들이 겁돌이에겐 선물이나 다름없었고, 매일 신발을 물어가 1층 제 집 안으로 옮겨놓는 걸 아주 재미있어했다. 


  매일 아침 신발을 개집에서 찾아와야 한다는 것이 어른들에겐 귀찮은 일이었겠지만 나에게는 아침부터 겁돌이를 만나러 갈 수 있는 절호의 찬스였고, 짐짓 싫은 체를 하며 짝이 맞지 않는 신발을 신고 1층으로 내려가 일부러 늑장을 부리며 수거해오곤 했다. 

  겁돌이가 어느 정도 자랐을 무렵, 온 동네 꼬마들의 짓궂은 장난에 예민해진 겁돌이가 으르렁거리자 대문 앞에는 개 조심 팻말이 붙게 되었고 어느 정도 덩치가 큰 겁돌이가 사나운 모습까지 보이자 부담이 된 집주인 아저씨가 어느 날 어디론가 겁돌이를 보내 버리실 때까지 겁돌이와 나는 둘도 없는 친구였다. 





  많은 사람들이 어린 시절 동물과의 추억을 갖고 있다. 

  학교 가던 길에서 매일 만나던 길고양이와의 우정, 개울가에서 물고기를 잡고 놓아주며 놀던 추억, 초등학교 앞 자판에서 병아리를 사 왔는데 모두 죽어버려 엉엉 울던 기억, 시튼 동물기에 빠져 밤이 가는 줄 모르고 읽던 기억, 퀴즈탐험 신비의 세계 프로그램의 인트로 음악만 들어도 자동적으로 TV 앞으로 가던 기억들 말이다. 


  동물을 좋아하던 많은 어린이들은 자라서 직접 동물을 반려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성인이 된다. 

  그런 성인들이 아픈 동물들을 데리고 찾는 곳이 동물병원이며 그곳에는 아픈 생명들과 그들을 사랑하는 보호자, 그 둘을 보듬는 수의사가 있다. 

  물론 모든 일들이 순탄하지만은 않지만 그들은 치료하고 치료받고, 기뻐하고 슬퍼하고, 위로하고 위로받으며 서로의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동물을 사랑하는 마음만으로는 아무것도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정도로 우리는 자랐지만 그 이상으로 무엇을 알아야 하는지는 정확히 알지 못한다. 


 



  나는 못 말리는 동물 애호가는 아니다. 

  아무리 봐도 뱀은 못생겼고, 새는 무섭고, 물고기는 잘 만지지도 못하겠다. 

  뭐 그러면서 수의사를 하느냐고 할 수도 있겠다. 그러게나 말이다. 

  그렇지만 나는 수의사가 되어 지금도 수많은 겁돌이들을 만난다. 같이 뛰어다니며 놀지도, 같이 우유 빵을 나눠 먹지도 못하지만 그 아이와 느끼던 교감을 많은 아이들과 늘 함께할 수 있음에 감사한다. 


  이 책은 동물 애호가라고 하기에는 조금 무색하지만 길고양이를 유난스레 좋아하고 아픈 고양이를 반려하고 있는 집사이자 매일매일을 아픈 동물들과 함께하는 한 평범한 수의사가 바라본 세상을 담고 있다. 

  어떠한 지식을 가르쳐주지도, 무엇도 강요하지도 않는, 단지 한 개인의 유치하고, 재미있고, 슬프고, 아름다운 경험담이며 그 개인이 사사로이 가슴에 품은 작은 생각을 풀어낸 책이다. 


  시답지 않은 개인의 경험이 단 한 명의 타인의 마음에라도 가 닿을 수 있다면, 그 이야기들을 통해 그대가 잠시나마 웃고, 위안받을 수 있다면, 동물들을 사랑하는 마음 이상으로 무엇을 알고 대비해야 하는지를 어렴풋하게나마 느끼게 된다면, 그것이 바로 내가 이 책을 쓰는 이유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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