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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개 Oct 04. 2022

마음으로 보면 예쁘다.

조건 없이 사랑하고 온전히 사랑받는다는 것



  매일 같은 길을 걷고, 같은 지하철을 타는 출근길에서 나는 매일 다른 사람들을 본다. 

  다양한 사람들을 보고 지나치며 걷는 것은 지루한 출근길을 그다지 지루하지 않게 만들어주는 하나의 재미이다. 

  한껏 멋을 내고 나온 눈이 큰 아가씨, 키가 엄청 크고 빼빼 마른 남자, 팔에는 문신이 가득하고 근육으로 우락부락한 남자, 꼬부라진 허리로 힘겹게 걸음을 옮기고 계신 할머니, 머리숱은 하나도 없는데 눈썹만큼은 송충이를 연상케 하는 아저씨. 다양한 키와 체격, 나이의 사람들을 보며 출근을 하면, 동물 병원에는 더 다양한 외모의 동물 친구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방금 미용이 끝나고 보호자를 기다리고 있는 뽀송뽀송 곰돌이 인형 같은 포메라니안, 누가 코를 힘껏 누른 듯 꾸욱 눌려서 숨이나 쉴 수 있겠나 싶은 페키니즈, 앙상한 다리로 후들후들 겨우 걸어 다니는 나이 많은 푸들, 아래턱이 위턱보다 밖으로 돌출되어 있어서 심통이 난 듯한 인상을 주는 시츄, 눈이 외사시여서 지금 얘가 나를 보고 있는 게 맞는지 의구심을 자아내는 치와와, 손가락만큼 짧은 다리를 나름 쭈욱 뻗으며 놀아달라고 하는 먼치킨 고양이.


  대부분의 개, 고양이들은 각기 다양한 매력을 가지고 있다. 품종에서 느껴지는 외관상의 특징뿐만 아니라 성격에서 풍겨 나오는 느낌까지 섞여, 하나하나의 개체는 독특한 개성을 뽐내게 된다. 못생겨도, 억울하게 생겨도, 볼수록 너무 귀여워서 자꾸 눈이 가는 아이들도 있다. 





  못생긴 달님이


  그러나, 솔직히 정말 이렇게 봐도, 저렇게 봐도 예쁘게 보기는 어려운 아이들이 있다. 

  눈은 하얗게 변색되고 털은 모두 빠져 없는데 피부에는 사마귀 같은 것이 덕지덕지 붙어있고 성격도 살갑지 않아 만나는 사람 모두에게 적대적이라면 아무리 좋게 봐도 첫눈에 사랑에 빠지기란 어려울 것이다. 

  내가 1년 넘게 신장 질환을 관리하다가 결국 무지개다리를 건넌 코카스파니엘 달님이가 그랬다. 


  달님이는 누가 봐도 첫눈에 사랑에 빠지기는 쉽지 않은 아이였다. 어렸을 때 고질적인 귓병으로 귀 수술을 받게 되어서 귓구멍이 없고 청력을 상실한 상태였고 눈병을 오래 앓아서 양쪽 눈엔 시력이 없고 눈이 퇴화되었으며 전신 피부는 만성적인 염증으로 만신창이라 달님이가 있던 자리엔 항상 각질이 떨어져 있고 특유의 냄새가 남았다. 


  오래전 귀 수술을 진행했을 때 너무 오랜 시간 마취를 해서인지 신장 질환을 얻어 신장 투석까지 진행한 이후 오랜 세월 동안 신장 관련 질소 수치가 높아져 있었기 때문에 입에서는 늘 질소 냄새가 났다. 신장 질환을 가진 아이의 입에서 풍기는 질소 냄새란 맡아본 사람만이 알 것이다. 정말 지독한 냄새인데, 그런 아이들의 침이 손에 많이 묻은 날에는 아무리 손을 씻어도 냄새가 지워지지 않는다. 


  이런 외관의 달님이는 성격도 보통 고집스러운 게 아니라, 자기가 싫어하는 손길이 닿으면 온몸을 비틀고 물 밖으로 나온 활어처럼 힘차게 반항하며 앞발을 휘두르고 큰 소리로 짖곤 했다. 경력 10년 차의 베테랑 미용실 선생님도 달님이 미용은 혼자 하실 수가 없어서 결국 주변에 도움을 청하곤 하셨다. 


  사람은 원래 예쁘고 아름다운 것을 추구하는 동물이다. 예로부터 전해오는 많은 신화나 전설에서도 아름다움에 마음을 빼앗겨 일을 그르치는 일들이 비일비재하지 않던가. 외모 지상주의라고들 하는데 사실상 동물병원에서도 처음에는 예쁘고 귀여운 아이들이 사람들의 관심을 더 받게 마련이다. 입원장 안에서 인형처럼 앉아서 까만 눈으로 빤히 쳐다보는 아이들을 보면 안아주지 않고 그냥 지나치기 어렵다. 

  그러나 동물병원에서 오래 일을 할수록, 객관적으로 예쁘지 않은 아이들도 결국 아주 예뻐 보이게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아간다. 





  달님이는 나와 처음 만난 시점에 이미 많이 아픈 상태였다. 얼핏 기력은 정정한 듯 보이나, 전신에서 고질적인 만성 질환을 오래 앓아온 아이의 느낌이 강했고 나이도 워낙 많아 딱히 질환이 아니더라도 이미 많이 노쇠한 상태였다. 또한 특유의 고집스러운 성격 때문인지 아니면 눈과 귀가 기능을 하지 못하여서 인지 정상적인 교감이 이루어지는 것도 어려운 아이였다. 


  이런 달님이가 어느 순간부터 예뻐 보이게 된 것은 보호자분 때문이었다. 

  보호자분은 40대 정도로 보이는 여자분이었는데 달님이가 아기였을 때부터 많은 아픔을 딛고 현재에 이르기까지 바로 곁에서 달님이에게 해줄 수 있는 모든 것을 해주신 분이었다. 

  귀 수술을 하고 나서 마취 때문에 신장이 망가져서 신장투석을 진행하면서 수의사조차 이 아이는 죽을 것이라고 하였을 때에도 보호자분은 달님이가 살아줄 것이라고 믿고 자신의 모든 것을 쏟으셨고, 달님이는 힘든 신장 투석 과정을 모두 이겨내고 다시 살아가게 되었다. 


  귀 수술 후 합병증으로 귀 아래 염증이 생겨 매일 세척하고 환부의 거즈를 갈아줘야 했을 때도 회사를 다니시는 중에도 매일 병원에 가서 필요한 관리를 직접 다 해주셨다. 

  보호자분께서 달님이를 위해 보내신 그 많은 세월을 생각하면서, 신장 질환 관리를 위해 지금도 힘쓰고 계시는 모습을 보면서 달님이를 세상에 있는 어떤 강아지보다 예쁘고 귀하게 바라보시는 보호자분의 눈빛을 보면서 나도 어느 순간 슬며시 달님이가 예뻐 보이기 시작했던 것 같다. 


  달님이도 어렸을 때는 정말 귀여웠을 것이다. 코카스파니엘은 아기일 때 특출 나게 귀여운 편에 속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앙증맞은 주둥이랑 착한 눈동자, 푹신푹신한 발. 어찌 보면 아기 사자를 닮은 것 같아 보이는 아기 코카스파니엘은 성격도 너무나 발랄하고 활동성이 넘쳐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저절로 미소 짓게 만든다. 

  물론 이런 성격 때문에 사고도 많이 치고 혼나기도 많이 혼나는 아이들이지만 그런 모습이 더 사랑스럽다. 

  달님이도 그랬겠지. 많이 아프고 나서부터는 비록 한쪽 방향으로만 걸어 다니고 누워서 소변을 보고 스스로 먹지 못해서 주사기로 입에 넣어주는 밥을 먹고 있지만, 왕년에는 너무 뛰어다녀서 사고 깨나 쳤을 거다. 


  



  조건 없이 사랑하고 온전히 사랑받는다는 것


  달님이는 보호자의 극진한 보살핌과 사랑을 15년간 듬뿍 받다 떠났다. 

  달님이는 눈도 보이지 않고 귀도 들리지 않았지만 아마 다 알았을 거다. 누군가가 항상 달님이가 필요할 때 옆에 있어 주었다는 것을. 어떤 상황에서도 그 누구보다 달님이가 제일 예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평생을 포기하지 않고 함께 해주었음을. 

  달님이가 떠나고 상당한 시간이 흘렀지만 아직도 달님이 보호자분은 잘 지내고 계시는지 문득 생각날 때가 있다. 진료실 안에서 달님이의 마지막을 함께 짐작하면서 눈꼬리가 선한 얼굴로 눈물지으시던 그 모습이 가슴에 남는다.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닌 그 존재 자체를 사랑하게 될 때, 우리는 그것을 진짜 사랑이라고 한다. 엄마가 아이를 볼 때, 어떻게 생겼는지와는 무관하게 예쁘다고 하는 것. 눈으로 보기 좋아서가 아니라, 그냥 조건 없이 따뜻한 마음을 갖는 것이 진짜 사랑이다. 





  당신이 지금 함께 하는 반려동물이 많이 아프거나 늙어 더 이상 예전 모습이 아니라면 너무 슬퍼하지 말았으면 한다. 귀가 들리지 않는 것 같으면 가까이에 다가가서 놀라지 않게 속삭여주고, 잘 걷지 못한다면 내가 그의 다리가 되어주고, 피부에 사마귀가 생기고 각질이 마구 일어난다면 자주 씻겨주고 소독해주면 된다.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그대로 사랑해주면 그만이다. 

  누구나 늙고 누구나 아프다. 반려동물 또한 그렇다.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그대로 예뻐해 줄 수 있는 진정한 사랑을 당신이 배울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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