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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개 Aug 03. 2024

28. Run! Run! Run!

2024. 3. 27 여행의 마지막날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의 마지막 날이자, 이번 여행의 마지막 날이 결국 오고야 말았다.

오늘은 호수공원에 나가서 러닝도 하고, 숙소에서 여유도 부리며 여행을 마무리하려 한다.


  나는 달리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되고, 체계적으로 달리는 걸 배운 적도 없이, 어플 하나 켜고 나 혼자 무작정 뛰는 왕초보 런닌이이다. 한국에 돌아가면 4월에 10K 마라톤 대회가 예정되어 있기 때문에, 여행 중에도 꾸준히 달리려고 계획했었지만, 여러 가지 사정과 체력의 문제, 의지의 문제 (?) 등으로 거의 실천되지 못하였다.

  오늘은 시간도 있고, 주변에 30분 정도 걸어가면 예쁜 호수가 있는 공원이 있다기에 거길 가서 뛰어볼 요량이다.




  산책하듯이 걸어서 공원으로 가는 길.

  가는 길부터 길에는 뛰는 사람들이 보인다. 운동복을 가볍게 입고 조깅을 하거나, 테니스 라켓 같은 것을 들고 걸어가는 사람들, 운동을 마치고 돌아오는 듯 땀에 젖은 사람들이 종종 눈에 띈다. 다양한 나이대의 사람들이 모두 저마다의 관심 운동에 빠져 시간을 할애하며 힘차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는 것이 아주 기분 좋았다.


  도착해 보니, 햇살에 유리처럼 반짝이는 호수와 아름드리 큰 나무들과 잔디, 벤치 등이 어우러진 아주 아름다운 공원이 나왔다. 와아~~ 햇살이 아주 강할 때만 볼 수 있는 반짝이는 잔잔한 호수.

  아름답다... 하며 사진을 몇 장 찍는 와중에 모기가... (감동 바사삭) 이미 5군데 넘게 물었다. 옷을 뚫고. ㅡㅡ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만난 모기들은 정말 강력하다. ㅠㅠ 손을 저어 쫓으면 일단 도망가는 한국 모기와는 스피릿 자체가 다르다. 아무리 쫓으려 해도 끈덕지게 달라붙으며 가미가제 스타일을 선보인다.

이 도시는 뭐가 문제인지, 어딜 가도 모기가 너무 심하게 많아서 여유롭게 걷기가 힘들 지경이었다.

온이는 이제 모기가 없어도 있는 듯하게 느끼는 환각증상을 보이기 시작했고, 나도 길거리에서 최대한 몸을 휘두르며(?) 걷는 모기(쫓는) 춤의 창시자가 되었다. 모기 PTSD 각이다.


  모기 때문에 서서 여유로이 호수를 감상할 수가 없었다. 냅다 뛰기 시작한다. (스트레칭 따위 할 시간이 없다. 가만히 서있으면 공격하는 가미가제 XX들)

  그룹으로 달리고 있는 듯한 사람들 뒤를 따라 슬며시 같이 뛰어본다. 처음엔 내 페이스가 좀 더 빠른 듯했지만 당연히 곧 뒤처지고... 나중엔 반바퀴 이상 차이가 났다. ㅋㅋㅋ

초반 페이스는 6분대였으나.. 7분... 8분... 급기야 9분대를 찍었다. ㅋㅋㅋㅋㅋ 뭐 할 수 없지. 난 왕초보인걸.

  오늘은 그래도 난생처음 1시간 이상을 쉬지 않고 달렸다. 걷는 것과 유사한 속도였을지라도... 암튼 지속적으로 뛰었다는데 의의를 두어본다.


나랑 같이 뛴(는 지 그들은 몰랐을) 러닝크루!


  잔디밭에서 케틀벨을 들고, 매트를 깔고 요가를 하고, 1대 1 PT 수업도 하고.. 다들 운동에 여념이 없다.

스장 같은 갇힌 공간이 아닌 탁 트인 호숫가에서의 운동은 아주 자유로워 보였다.

그러나 사실(개방감이고 뭐고...) 그들을 보는 나는 모기 걱정뿐이었다. ㅋㅋㅋㅋ 저렇게 탑만 입고 잔디밭에서 운동을 하면 최소 수십 방은 물릴 거 같은데.... 실제로 한 여자분의 레깅스 위에 모기가 여러 마리가 붙어서 같이 러닝 중인 모습을 보고 나는 벌레기피제를 온몸에 분사하였다.

  모기만 없었어도 벤치에 좀 앉아서 휴식을 즐기고 싶었는데... 할 수 없이 곧장 다시 숙소로 향했다.

하아.... 부에노스아이레스는 나에게 모기의 도시로 기억에 남을 듯하다. ㅎㅎㅎ


  러닝을 시작한 것은, 나에겐 꽤나 긍정적인 일이었다. 작은 목표를 갖고 이루어나가며 성취감을 느끼고, 중/장기적 목표를 이루는 과정에서 건강까지 챙길 수 있으니, 일석이조다.

  더 멋지게 뛰는 날이 오길. 아니, 그보다도, 포기하지 않고 게을러지지 않고 꾸준히 유지할 수 있길 바라본다.

 뛰다가 힘들어지는 날이 오면, 부에노스아이레스의 호숫가에서 함께 달리던 수많은 사람들을 떠올려야지.




  집에 와서 땀과 모기기피제가 범벅이 된 몸을 씻고, (뛰면서도 계속 뿌려댐) 개운하게 점심을 먹기로 한다.

숙소 옆, 햄버거가게가 인기가 좋은 것 같길래 가보기로!

  숙소로 포장해 와서 이번 여행 중 우리의 사랑이 된 파타고니아맥주와 함께 먹는데, 와... 너무 맛있어서 1개 더 사 오는 지경에 이름. 내가 하루에 햄버거 2개 먹는 일은 오늘이 아마 평생 처음이자 마지막이지 않을까?

그러나... 결국 욕심은 사단을 불러일으키지... 쪼금 체한 기분이 들어서 소화제를 먹고 저녁은 굶기로 한다. ㅜㅜ


설명이 필요 없는 비주얼. 햄최몇?


  숙소 벤치에 앉아 느긋이 산들바람을 느끼며 사색을 한다.

여행에서 느낀 여러 가지 감정들. 이 긍정적 에너지가 돌아가 일상에서도 이어질 수 있도록 할 방법, 행복하게 살아갈 생각, 내 고양이들 생각.

  망가진 나를 다시 오롯이 세우기 위해 계획하였던 이 여행의 끝무렵.. 나는 정말 나다워질 수 있었나 돌이켜본다.


  이제 내일은 기나긴 비행이 기다리고 있다. 역대급 이동시간. 총 거의 40시간을 이동해야 하는 날이다.

슬슬 한국이 그리워지던 우리는 한국에 돌아가자마자 먹고 싶은 음식을 머릿속에 그리며 아쉬움과 기대감을 동시에 품고 잠이 든다. (온이는 다음날 비행이 끝날 때까지도 뭘 먹을지 못 정하고 배달을 한 3군데에서 시킬 기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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