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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개 Aug 07. 2024

29. Hasta luego, 나의 남미.

2024. 3. 28 마지막 40시간의 여정

대이동 시작 전, 마지막 만찬, 숙소 근처 카페 브런치!


 12PM, 체크아웃, 공항까지 1시간 택시 이동,

 4PM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칠레 산티아고로 비행 2시간+a

 11:30 PM 산티아고에서 LA로 비행 10.5시간+a

 12PM LA에서 인천으로 비행 13.5시간+a

순수 비행시간 26시간, 경유와 목적지이동까지 고려하면 40시간가량! 살인적 이동이다.


  사실 이동을 시작할 때는 별 생각이 없었다. ㅋㅋㅋ 뭐 어떻게든 되겠지~ 가만히 앉아있으면 데려다주는데 뭐가 문제람~이라고 생각했지.. 허허..... 그거슨 착각이었다. 정말 마지막 인천행 비행기 안에서는 눈물만 안 흘렀지 마음속으로는 엉엉 울고 있었다. 뭐라 정확히 설명할 수 없는 미칠 것 같은 몸상태. ㅋㅋㅋㅋㅋㅋ

정신병원에서 중증 환자들에게 입히는 전신 구속복을 입혀놓으면 이런 기분일까?

팔을 이리 꼬고 저리 꼬고 다리를 최대한 폈다 굽혔다 의자 위에 올렸다 내렸다 발은 내발이 아닌 듯 부어있고...

  어쨌든 살아서 도착하였으니 되었다..!




  공항은 (끔찍하게 긴 비행만 아니라면) 나에게는 항상 설렘의 공간이다.

기대에 찬 여행객과 이 공간이 익숙지 않은 외지인들의 호기심 및 약간 긴장된 눈빛들. 반가운 사람을 만나는 공간이자, 누군가가 어색하고 더딘 행동을 하고 있더라도 이해해 줄 수 있는 열린 공간.

그리고 공항은 긴장된 공간이기도 하다. 내가 뭔가 싣지 말아야 할걸 수화물로 부치진 않았는지, 내 짐이 실수 없이 목적지까지 부쳐졌을 지에 대한 걱정, 뭔가 서류가 더 필요하다거나 잘못되진 않았을지에 대한 긴장감. 탑승 Gate가 변경되었는데 모르고 있다가 낙오되진 않을지에 대한 걱정.

  횟수를 거듭할수록, 실수는 적어지고 걱정과 긴장은 무뎌지지만, 그래도 외지인으로서 중간 경계 지역에 들어와 있는 느낌이 완전히 편하지만은 않다.

  이렇게 설렘과 긴장이 뒤섞인 상태에서의 공항에서의 대기 시간은 지루할 틈이 없어야 할 것 같지만 ㅋㅋㅋㅋㅋ 사실 7시간씩 기다리다 보면 활주로로 뛰쳐나가서 달리기를 하고 싶은 심정이 든다. ㅋㅋㅋ


환승 할땐 스타벅스가 진리!!! (우리의 메인 대화 주제 : 한국에 가면 과연 뭘 먹어야 잘먹었다고 소문이 날 것인가!)




  오늘로써, 한국을 떠난 지 26일째.

낯선 공간에서 일상을 벗어나 지낸 26일이 나에겐 엄청난 의미가 있는 시간이었다.

매일을 쳇바퀴 돌듯이. 일, 운동, 가계부, 다이어트, 등등 나를 옭아매던 모든 일들에서 완전히 벗어나 자유를 찾았다. 특히 나를 괴롭히던 나쁜 기억들로부터도 벗어날 수 있었다.

  마지막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는 특이한 경험을 했다.

그를 떠올리면 끔찍하게 싫고 소름 끼치게 무서웠던 기억만 떠올랐었고, 난 그게 너무 힘들었었다. 너무 강렬했기에 그런 기억들이 항상 자동적으로 떠오르고 좋았던 기억은 어디론가 연기처럼 사라진 듯했다.

그런데 부에노스아이레스 시내를 걷던 중, 온이에게 내가 말하는 거였다.


  "그 사람이랑 이런 길에서 앞뒤로 같이 자전거를 타면서 이어폰으로 대화하며 달리기도 했었는데~"

  "그분 기억은 땅끝에 다 놓고 온다고 하지 않았어요? 덜 놓고 왔나 보네~~"

  "ㅎㅎㅎㅎ 그러네... 나쁜 기억을 먼저 놓고 왔나 봐."


  딱 하나 남은 좋은 기억인 마냥, 그때의 기억이 여행 마무리 즈음 떠오른 것은, 무슨 의미였을까.

나쁘고 끔찍했던 기억을 이기고 마음 구석에 숨어있던 작은 기억이 떠오를 수 있을 만큼, 나쁜 감정이 나에게 중요한 부분을 더 이상 차지하지 못하게 된 것은 아닐까?




  나의 일상이 묻어있는 공간에서 완전히 벗어나, 26시간의 비행을 감수해야 올 수 있는 타지에서의 26일.

완전히 탈바꿈된 내가 되었다고는 할 수 없지만, 좀 더 힘을 내며 행복하게 살아갈 디딤판이 되었다는 느낌이 든다.

  돌아가서 다시 일상에 매몰되면, 다시 비슷한 패턴이 반복될 수 있겠지만, 최소한 이번 여행은 내가 아직 살아있고, 행복해질 충분한 자격과 능력을 갖춘 사람이란 것을 알려주었다.


  많은 기억들이 스쳐 지나간다. 푸에르토나탈레스에서의 한적한 여유, 토레스델파이네에서의 꿈같았던 3박 4일 트레킹, 엘칼라파테의 거센 바람과 호수, 빙하, 엘찰튼에서 만난 세계트레커들과 야생여우, 우수아이아에서 불던 청량한 남극 바람과 펭귄 떼, 세상의 끝, 이과수 폭포, 그리고 부에노스아이레스의 탱고.


  나의 첫 남미.

  다시 올 그날까지 내 머릿속에 오래오래 머물러주길. 이곳에서 자유롭고 행복했던 나의 모습을 기억하길.

  안녕 파타고니아, 안녕 아르헨티나. 안녕 나의 30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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