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식 콩나물 잡채

소노마에 퍼진 참기름향

by 이레

수염이 난 할아버지는 신의주 출신이셨다. 그분은 우리 외증조할아버지였다. 그런데 묘하게도, 그분이 가장 좋아하셨던 음식은 부산식 콩나물 잡채였다. 외할머니는 늘 콩나물을 사 와 빨갛게 양념해 콩나물 잡채를 후다닥 만들어 내곤 하셨다고 한다. 그 모습을 보며 자란 엄마 역시 마땅한 반찬이 없을 때면 언제나 그 음식을 상에 올리곤 했다.

신의주 출신의 분이 어쩌다 부산식 음식을 좋아하게 되셨는지는 알 수 없다. 아마 피난 시절에 맛을 들이신 게 아닐까 싶다.

수십 년이 흐른 어느 날, 사촌동생 집에서 손님을 초대해 작은 파티를 열었다. 급히 상을 차려야 했는데, 놀랍게도 초대된 서양 친구가 유독 좋아하는 음식이 잡채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날은 오전부터 샌프란시스코 공항으로 친구를 마중 나가야 하는 일정이라 시간이 빠듯했다. 정식 잡채를 만들 여유가 없던 그때, 번뜩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 것이 바로 엄마가 급할 때 종종 만들어주시던 콩나물 잡채였다.

우리 집에서는 얇게 썬 돼지고기를 양념해 넣곤 했지만, 사촌동생은 돼지고기를 먹지 않아 대신 어묵을 썰어 넣었다. 고춧가루와 마늘, 설탕, 간장을 넣고 바르르 끓이다가 불린 당면을 넣고 재빨리 볶는다. 마지막으로 콩나물과 참기름을 넣어 마무리하니 금세 향긋한 냄새가 퍼졌다.

그 사이 사촌동생은 손님 가족을 위해 풀장의 물을 데워놓고, 상을 차릴 준비를 했다. 공항에서 막 도착한 친구도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자연스럽게 일손을 거들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상이 완성되고, 사촌동생 가족들이 하나둘 모였다.

초가을의 소노마, 따스한 햇살 아래 물놀이가 한창이었다. 물놀이를 마친 이들은 젖은 수영복을 갈아입고 머리를 타월로 감싸 올린 채 식탁에 둘러앉았다. 한쪽에서는 스테이크가 구워지고, 다른 한쪽에는 나물, 잡채, 김밥이 차려졌다. 디저트는 친구가 직접 구워 온 브라우니였다. 로제 와인으로 시작해 레드 와인으로 이어지고, 아이들은 이곳저곳을 뛰어다닌다. 한국어와 영어가 뒤섞인 대화가 식탁 위를 오간다.

문득 생각했다. 100년 전, 우리는 이런 세상을 상상할 수 있었을까? 200년 전, 300년 전에는?
그 오래전에는 지구 반대편에서 피부색이 다른 사람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삶을 꾸려가고 있다는 사실조차 상상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 기술의 발전 덕분에 한 테이블에 여러 문화와 인종, 사회적 배경을 지닌 사람들이 모여 각자의 언어로 대화를 나눈다. 그리고 서로의 문화가 양념처럼 녹아든 음식을 함께 나눈다.

그 순간, 나는 이 기적 같은 장면 속에서 깊은 감사함을 느꼈다.


“This japchae tastes amazing.”
“Thanks.”


수줍게 답하며 그녀의 이메일로 레시피를 전송했다. 참고할 수 있도록 유튜브 링크도 함께 보냈다.

다민족의 화합이란 거창한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한 끼의 식사를 함께 나누는 일, 그 단순한 행위 속에서도 충분히 이뤄질 수 있지 않을까.
짧지만 따뜻한 꿈을 꿔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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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료



당면 2인분 (고구마 전분면)

콩나물 1 봉지

어묵 2장 (얇게 채 썬 것)

부추 한 줌 (먹기 좋은 길이로 자른 것)

양파 ½개 (얇게 채 썬 것)

다진 마늘 1½스푼

간장 7스푼

설탕 1½스푼

미림(맛술) 2스푼

고춧가루 2스푼

참기름 2스푼

물 3스푼

식용유 약간 (볶을 때 사용)

소금 약간 (간 맞추기용)



� 준비 과정



양파는 얇게 채 썹니다.

어묵은 얇게 길게 썰어둡니다.

부추는 5cm 정도 길이로 자릅니다.

콩나물은 찬물에 헹군 뒤 체에 밭쳐 물기를 빼줍니다.



� 조리 방법



볼에 간장 7스푼, 설탕 1½스푼, 미림 2스푼, 고춧가루 2스푼, 다진 마늘 1½스푼, 물 3스푼을 넣어 양념장을 만듭니다.

팬에 식용유를 두르고 양파를 볶아 투명해질 때까지 익힙니다.

양파가 익으면 준비한 양념장을 부어 약불에서 살짝 끓입니다.

당면과 콩나물을 넣고 뚜껑을 덮어 익힙니다.

콩나물이 부드러워지면 뚜껑을 열고 재료들을 잘 섞으며 볶습니다.

간을 보고 부족하면 소금으로 맞춥니다.

마지막으로 참기름 2스푼을 넣고 잘 버무려 마무리합니다.



� 팁



불릴 필요 없는 즉석 당면을 사용하면 편리합니다.

일반 당면을 사용할 경우 찬물에 약 1시간 정도 불린 뒤 물기를 빼고 사용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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