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양을 이어준 추억
미국에 와 있다.
사촌동생네 집에서 일주일 넘게 머무를 예정이다.
공항에서 들어오는 길에 마트에 들러 장을 봤다.
미국 생활이 오래된 그녀의 식성은 이제 거의 서양인과 다를 바 없다.
카트에 담긴 만두 봉투에서 ‘고수’라는 글자를 본 순간,
향만큼이나 그녀와 나 사이의 거리가 멀게 느껴졌다.
간단한 저녁을 마치고 소파에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
문득 할아버지의 냉면 사랑 이야기가 나왔다.
신의주가 고향인 외할아버지는 제면소와 메밀밭을 직접 소유할 정도로 냉면을 사랑하셨다.
하루에 평양냉면 한 그릇은 꼭 드셔야 했고,
캐나다로 이민 간 후에도 그 습관은 변하지 않았다.
그래서 외할머니는 김장김치를 담글 때마다
늘 냉면에 곁들일 김치를 염두에 두셨다.
겨울 김장은 조금 달랐다.
정육점에서 잡뼈와 고기를 사 와 푹 고운 뒤,
거즈에 두 번 걸러 맑고 깊은 국물을 만든다.
고춧가루, 소금, 아주 약간의 새우젓이 양념의 전부였다.
마늘과 파, 그리고 약간의 과일을 믹서에 곱게 갈아 넣으면
김치 양념은 연한 핑크빛을 띠었다.
무는 채 썰어 넣지 않았다.
국물에 들어갈 때 보기 좋지 않기 때문이다.
걸러낸 고기국물을 넉넉히 부어
김치냉장고나 항아리에 숙성시키면,
김치가 익을 무렵 사이다처럼 혀끝을 톡 쏘는
김칫국물이 완성된다. 어릴 적 한겨울, 눈이 소복이 내리던 밤이면
할머니와 할아버지, 엄마와 아빠가 모여
국수를 삶아 먹었다.
냉면이면 더할 나위 없었겠지만,
가정집에서는 냉면 면을 뽑기 어려웠다. 그래서 할머니는 흰 소면을 삶아
차가운 물에 바락바락 헹궈 쫀득하게 만들고,
그 위에 송송 썬 김치를 얹고 달걀을 하나 올린 뒤
넉넉한 국물을 부어 내셨다.
밖에는 눈이 내리고,
베란다 창문엔 김이 하얗게 서렸다.
그 식탁에서 우리는
김치말이 국수를 후루룩 먹으며
주말엔 누구를 초대할지,
내일 유치원은 누가 데려다 줄지,
아주 사소한 이야기를 나눴다.
캘리포니아의 한 가정집 소파에 쪼그리고 앉아
그 머나먼 기억을 더듬자
혀뿌리부터 침이 고인다.
할아버지 대부터 내려온
김치말이 국수의 기억은
태평양을 사이에 두고도
사촌동생과 나를 여전히 이어주고 있다.
요리법
재료 (2인분 기준)
소면 2인분
묵은 김치 1컵 (잘 익은 김치)
김칫국물 2컵
물 2컵
얼음 1컵
달걀 1개 (삶아서 반 갈라 준비)
오이 1/2개 (채 썰기)
참기름 약간
통깨 약간
김치가 너무 짜거나 신맛이 강하면 물을 조금 더 섞고, 약간의 설탕으로 간을 맞춰주세
1. 익은 김치의 속을 털어내고 잘게 썬다.
2. 김칫국물 2컵 + 물 2컵을 섞어 냉장고에서 미리 차갑게 식혀둡니다. 또는 김칫국물 2컵과 시판용 육수를 반반 섞는다. 간을 보고 짜면 물을 섞는다
(또는 얼음과 섞어 바로 시원하게 준비해도 좋아요)
3. 입맛에 따라 식초, 설탕을 첨가한다.
4. 끓는 물에 소면을 넣고 끓어 오르면 찬물을 크게 한 컵 넣는다.
5. 다시 끓으면 찬물을 한컵 또 붓고 이후 다시 끓으면 불을 끄고 찬물에 재빨리 면을 헹군다.
6. 전분기가 없어지도록 바락바락 주물러야 쫄깃한 국수 변발이 완성된다.
7. 그릇에 면을 동그랗게 말아 담고, 육수를 넉넉하게 부어준다.
8. 삶은 달걀 오이채 통깨 참기름을 한 방울 올려 마무리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