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길가에서 스쳤을지도 모를 당신에게
어린 시절, 저는 소설가가 되고 싶었어요. 제가 읽은 소설 속 세계는 항상 너무나 아름다웠거든요. 물론, 천진난만한 초등학생이 처음 잡은 펜대는 쉽게 굴러가 주지 않았습니다. 결국 딱 한 줄 쓰고 포기했어요.
"옛날 옛날, 어느 바닷가 마을에 가난하지만 마음씨 고운 할아버지 어부가 살았습니다."
사실 줄거리는 머릿속에 완성되어 있었습니다. 생계를 위해 할아버지는 바다로 나가지만, 막상 물고기를 잡을 때마다 보살펴야 할 가족이 있는 그들의 사연에 마음이 아파 다시 풀어주기를 반복하죠. 며칠이 흐르는 사이, 돈이 없어 제대로 밥을 먹지 못한 할아버지는 몸이 약해져 배를 띄울 수 없게 됩니다. 모습이 보이지 않는 할아버지를 걱정해 몰래 집을 찾아간 거북이가 그의 상태를 목격하고, 이를 전해 들은 물고기들은 십시일반으로 할아버지에게 진주를 모아다 줍니다. "진주를 팔아 많은 돈을 번 할아버지는 영원히 행복하게 살았답니다"로 끝나는, 딱 초등학교 1학년이 떠올릴 법한 단순한 이야기였어요.
하지만 저는 그 이야기를 끝끝내 쓸 수 없었습니다. 저는 도저히 그 할아버지 어부한테 공감할 수 없었거든요. 당장 내 배가 너무 고픈데 물고기들이 자꾸 놓아달라고 하면, 처음 몇 번은 마음이 약해지더라도 결국에는 무시할 것 같았어요. 설령 물고기들을 다 놓아준다 하더라도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울릴 때마다 마음이 원망으로 가득 찰 것 같았죠. 하지만 할아버지는 마치 화를 낼 줄도, 원망할 줄도 모르는 사람 같았어요.
저는 제가 이해하지 못하는 주인공의 이야기를 쓸 자신이 없었습니다.
더 이상 소설가를 꿈꾸진 않지만, 아직까지도 틈틈이 소설 비스무리한 것을 끄적여보긴 합니다. 제가 이해할 수 없는 주인공을 설정하지 않는 요령을 배웠고, 노트북 한 켠에는 쓸 수 있는 소설 목록이 생겼습니다. 그럼에도 제대로 완성한 글은 아직 없습니다. 아마 앞으로도 완성시키지 않을 것 같아요. 이 세상에 내놓기엔 내 소설들이 일기마냥 나를 너무 속속들이 비추고 있거든요.
있지요, 지금 당장 소설을 한 편 쓴다고 생각하고 주인공을 상상해서 만들어 보지 않을래요? 어떤 외양을 가졌나요? 어떤 성격을 지녔죠? 가족관계는 어떻게 되나요? 집안 분위기는 어때요? 친구는 몇 명이나 되죠? 취미가 뭔가요? 동물을 좋아하나요? 편식하는 음식은 없나요? 그리고,
왜 그렇게 설정하셨나요?
완전히 다른 세상 속 이야기를 풀어내듯이 소설을 시작하지만, 문득 정신 차리고 보면 구석구석마다 제 삶의 편린이 담겨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무뚝뚝하고 차가운 이웃집 소녀에게서는 늘 무섭다는 소리를 듣는 내 첫인상이 보이고, 시도 때도 없이 시시껄렁한 농담을 던져대는 마술사에게서는 이따금 생각 없이 단순하고 가볍게 살고 싶어하는 내 욕망이 묻어나요. 소설 속에서는 내가 원하는 갈등이 빚어지고,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풀려요. 원로작가들은 흔히 캐릭터들이 제멋대로 날뛰어서 통제하기 힘들다고 하지만, 단편소설 하나 제대로 끝내본 적 없는 아마추어에게 소설은 작가 그 자체가 되어버리는 것 같습니다.
내가 쓰는 소설이 나를 담아내는 건 당연한지도 몰라요. 모든 게 내가 관찰한 대상, 내가 경험한 일, 내가 생각한 것으로부터 시작하니까요. '내가 쓸 수 있는 소설'이란, 결국 내가 살아가는 나날이라는 더 큰 소설의 스핀오프*입니다. 그러니 아무리 불을 뿜는 블루드래곤을 주인공으로 삼는들, 그 거대한 변종도마뱀 역시 결국 나의 조각일 수밖에요.
*spin-off : 파생작
궁금하네요. 당신이 떠올린 주인공은 어떤 모습이었을지.
그 안에는 당신의 무엇이 담겨있나요?
책장을 훑어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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