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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율란 Mar 25. 2020

불완전함이 만드는 행복한 아이

40년 동안 덴마크 아이들의 마음을 사로잡다

엄마가 되고 조금은 변한 게 있다면 아이들이 부르는 노래의 가사들과 아이들이 보는 프로그램의 캐릭터 이름들을 알아가는 것이다. 이것들을 알아야 아이와 대화를 나눌 수 있고 교감할 수 있으니까. 재밌는 것은 아이들의 프로그램들을 함께 보다 보니 오히려 내가 좋아하는 프로그램도 생기고 어떤 프로그램의 팬이 되어 아이와 함께 즐기고 있는 나를 보며 웃음이 나오기도 한다. 함께 보다 보면  ‘아~ 아이들이 좋아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었구나’ 하며 머리를 끄덕이기도 한다.


이제는 아이에게 어떤 프로그램을 소개해 줄지 이런저런 프로그램을 돌아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보는 프로그램들을 통해 세상을 이해하고 등장인물들을 통해 자아와 세상의 관계를 이해하는데 이러한 프로그램들은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그래서 가능하다면 (아이의 관심도와 선호도를 당연 참고해야겠지만)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프로그램을 보여 주려 노력하게 된다.



덴마크 어린이 장수 프로그램 ‘밤스의 그림책’


4살 첫째 아이가 요즘 잘 보는 프로그램이 있는데 밤스스 빌를보우 (Bamses Billedbog 번역: 밤스의 그림책)이라는 덴마크 공영방송 DR의 장수 프로그램이다. 3세부터 6세가량의 어린이들에게 굉장히 인기가 많다. 1982년부터 제작되어 그다음 해부터 방송을 시작한 밤스 시리즈는 덴마크의 어른 세대들이 보고 자란 추억의 프로그램이고 요즘 아이들에게도 여전히 인기를 과시하고 있다. 과연 ‘국민 곰돌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처음 ‘밤스’를 접했을 때 든 생각은 ‘참 제작비 적게 들었겠다’ ‘ 이야기 진행속도가 참 느리다’ ‘주인공 밤스와 친구들 대체 뭐 하는 거지?’ 등등 였다. 조금은 고개가 갸우뚱해지고 도대체 재미도 없어 보이는 프로그램이 인가가 있는지 이해가 되질 않았다. 1982년에 시작되었다면 근 40년의 시간 동안 이어져온 프로그램이라는 뜻인데 갑자기 비결이 궁금해졌다. 이러한 의문은 곧 시간을 초월하며 모든 아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있는 비결이 무엇일까?’  ‘특별한 이유는 무엇일까?’그리고 ‘아이들이 좋아하는 이유는 뭐지?’ ‘밤스의 제작 의도는 무엇일까?’라는 질문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밤스 프로그램에서 찾아볼 수 없었던 것


1. 완벽한 영웅 캐릭터
밤스 프로그램은 사람 사이즈의 인형들이 숲 속에 살며 일상에서 펼쳐지는 에피소드들로 구성된다. 밤스 프로그램에 나오는 주요 등장인물들은 밤스(Bamse- 곰인형) 쿨링(Kylling-닭 인형) 애알링(Ærling- 오리 인형)이 있다. 가끔 다른 어른이나 사람들도 종종 등장한다.


에피소드의 내용은 굉장히 심플하다. 예를 들면 밤스가 하루는 너무너무 심심하고 지루한 하루를 보낸다. 너무 심심한 나머지 나무에도 올라가 보고 친구들을 찾아가 괴롭혀도 본다. 하지만 이 심심함이 가시지가 않는다. 집에 돌아가 빨랫줄과 화분에 물 주는 수조를 이용해 샤워기를 만든다. 집에 찾아온 친구들 머리 위에 물을 뿌린다. 그걸 너무나 재밌어한다. 평범하면서도 조금은 유치한 내용이다.


주인공인 밤스는 5살 어린아이의 정신 수준을 가지고 있다. 밤스는 이기적이고, 질투 심고 많고, 약점 투성이인 성격을 가지고 있다. 보통 주인공들은 착한 마음을 가지고 다른 사람을 도와주는 캐릭터들이 많지만 밤스 캐릭터는 착하고 정의로운 것과는 거리가 멀다. 그다지 특별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장난꾸러기 순진무구함에 귀엽지도 않다. 하는 행동들이 이기적이어서 얄밉기까지 한다. 주인공은 무엇인가 착하고, 특별하고, 본이 되어야 하는데 밤스 프로그램에는 그런 주인공들과 등장인물들은 존재하지 않는다.


2. 바른말만 하고 자꾸만 가르치려는  ‘뽀미언니캐릭터
어렸을 때 본 뽀뽀뽀 프로그램에는 뽀미언니가 있었다. 뽀미언니는 착했고 친절했으며 항상 좋은 답을 가지고 있어서 무엇이든 잘 알려주었다. 그리고 다른 많은 프로그램들도 누군가 한 명은 완벽하거나, 특별하거나, 착한 누군가가 나와서 어떠한 교훈을 심어 주었다. 누군가는 이런 인물이 있지 않을까 내심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려봤지만 밤스 프로그램 속에선 찾지 못했다.


완벽함과는 거리가 먼 밤스와 그 친구들 그리고 프로그램 속에는 누구 하나 이래야만 한다 이건 이래서 안된다라고 다그치는 사람이 없다. 종종 ‘루나(Luna)’처럼 어른 친구들이 등장하지만 그들은 주요 등장인물들을 꾸짖거나 어떤 행동을 해야 하는지 강요하고 가르치지는 않는다. 생각해보면 잔소리를 해서 어떤 사람을 바꾼다는 것은 정말 힘든 일이다. 사람은 행동의 패턴이나 동기에 변화를 줘서 행동을 변화시키는 것이지 강한 규정이나 꾸지람을 주어서는 좀처럼 행동이 변하거나 무엇인가를 가르치기는 힘들다고 생각한다.


3. 화려한 애니메이션과 기교
밤스와 친구들은 숲속 집에서 산다. 소품도 간단하고 이야기는 어른이 보면 지루할 정도로 천천히 흘러간다. 동물들의 탈을 쓴 사람들이 하는 연기는 그다지 대단한 기술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심지어 주스를 마시거나 팬케이크를 먹는 장면에는 음식이 입 옆으로 새는 장면이 나와 사실성도 떨어진다.


하지만 40년 가까이된 밤스 캐릭터는 변함없이 한결같은 모습이고 밤스와 주인공들이 사는 숲 속에서 들려오는 새들의 지저 기는 소리와 나무들 사이로 들어오는 밝은 햇살을 보면 세러피를 받는 효과가 있다. 바쁜 하루의 일상 속에서 하루의 일과를 마치고 유치원에서 돌아와 조용히 밤스를 보고 있는 아이를 보고 있자면 화려하고 그래픽이 많은 만화영화보다 여유를 찾고 편안한 표정을 볼 수 있다. 아이들의 눈을 사로잡는 중독성 강한 만화가 많아 걱정이 되는 시기에 아날로그적이고 부드러운 프로그램을 보는 아이를 보니 내 마음도 놓인다.



밤스를 보며 느낀 점 몇 가지


1. 흠많고 약점이 투성인 자아 하지만 ‘괜찮아’

우리는 아이들이 책을 보거나 TV 프로그램들을 통해 어떤 특정한 가치관들을 배우기를 바라고 기대한다. 그 특정한 가치들은 보통 착하고, 배려있고, 용기 있고, 정의로운. 뭐다 좋은 것 들이다. 하지만 이러한 이러한 캐릭터들만 가득한 프로그램만 본다면 아이들에게도 꼭 이러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틀과 기대감을 만드는 건 아닐까?


그러한 점에서 정의롭지도 않고 그다지 착하지도 않은 현실성 있는 밤스의 캐릭터는 우리에게 완벽함을 강요하지 않는다.


완벽한 자아와 완벽해야만 한다는 자신에 대한 기대감을 가르치기보다는 우리는 약점이 많고 완벽하지 않아도 된다는 을 가르쳐야 한다. 그리고우리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아이로 자랑 수 있다.



좋은 프로그램을 통해서 좋은 가치관을 심어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너무나 틀에 박힌 생각 속에서 꼬 이런 사람이 되라고 강요하고 있지는 않나 생각이 든다. 그렇게 자란 아이들은 현실과 먼 자신에 대한 이미지나 기대를 형성하게된다. 목표를 성취하지 못하고 그 기대치에 미치지 못했을 때 낙오자나 실패자로 자신들 생각해 버릴 수 있지 않을까? 어떤 시각이 세상과 ‘나’를 바라보는 올바른 시각일까? 완벽하지 않고 약점 투성이인 것이 우리의 진짜 모습 아닌가?


2. 완벽함보다는 불완전한 게 당연하다는 사실

밤스 외에도 덴마크에서는 TV 프로그램이나 광고에서 완벽함보다는 자연 그대로 지향하는 예들이 많다. 예를 들면 로맨스 씬이나 사람의 몸에 대해서도 아이들에게 ‘자연스러운 것’으로 거침없이 노출한다. 전에 모두가 보는 버스 뒷면 광고에서 여성의 나체 사진이 적나라하게 나왔는데 그걸 보며 드는 생각은 ‘와 이런 거 이렇게 막 노출시켜서 아이들이 봐도 되나?’ 하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배우게 된 것은 사람의 ‘몸’과 ‘사랑’ ‘섹스’와 같은 것은 지극히 자연적이라는 것이지 부끄러워하거나 숨길 것이 아니라는 덴마크인들의 생각이 담겨 있는 것이라는 걸 알았다. 그리고 아이들이 보지 말아야 할것이 아니라 그것을 자연스럽게 바라보는 시선을 가르친다는 것이다.


완벽한 몸에 치중해서 비현실적인 비율의 몸매나 완벽한 피부를 강조하는 카메라의 앵글보다는 현실에 가까운 몸을 보여줄 때  현실은 이미 완벽한 것이 아니라는것을 알려준드. 그리고 머리에 정형화된 완벽함을 추구하기 위해 소중한 인생을 낭비하지 않아도 되는 삶을 살지 않아도 돤다. 완벽하다고 믿는 어떠한 답이 정해진 미래를 아이들에게 주입하며 그 기대에 미치지 못한 완벽하지 않음으로 꼬집고 비판하며 아이들을 덜 행복하게 만들고 있지는 않나 생각해 본다.


3. 가장 자연스럽고 나다움을 인정하는 것이 행복한 아이를 만든다.

우리는 내 아이가 행복해 지길 바라며  완벽함을 정해 놓은 채 그것을 가르치려고 하는 건 아닌가? 꾸며진 모습보다는 자연스럽고 나다움을 찾도록 우리는 도움을 줘야한다. 우리가 사는 현실도 그다지 완벽하지 않고 우리도 완벽하지않다는 것을 가르치는 것이 더 필요한지 모르겠다. 그리고 완벽하진 않지만 불완전함 자체가 나다움이라는 것을 안다면 자존감도 더욱 높아질  있을 것이다. 모두가 똑같이 추구하는 완벽함에 끼워 맞추는 내가 아닌 불완전함이 나의 완전함이라는 것을 인정할  진정 행복한 삶을 살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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