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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율란 Mar 26. 2020

‘인싸’ 되는 건 꿈도 꾸지 마세요

덴마크에서 친구 사귀기

‘인싸’(Insider)라는 말이 많이 사용된다. 흔히 ‘그는 인싸야’ ‘인싸 라면 이 정도 아이템은 있어야지’라는 의미에서 사용된다. 누구는 ‘인싸’ 누구는 ‘아싸’로 구별을 짓고 소비문화를 부추긴다는 비판의 기사를 본 적이 있다. 같은 생각이다. 생각해보니 우리는 누구를 한마디로 ‘정의’ 내리고 그 ‘카테고리’에 내가 들어가는지 생각하기를 좋아한다. ‘그는 금수저’ ‘그는 흙수저’ ‘그는 엄친아’ ‘그는 얼굴 천재’ ‘나는 걔 옆에서 오징어’ 등등 처음에는 나도 재밌어서 웃었지만 정작 내가 그렇게 불릴 수 있다고 생각하면 좀 슬퍼지기도 한다. 이러한 구분 짓기, 외모 띄워주기는 덴마크에서는 흔히 볼 수 없다.


덴마크인 친구 만들기가 어려웠다는 이야기를 쓰고 글의 제목을 어떻게 쓸까 하고 고민하다가 왠지 ‘인싸’라는 말을 써보고 싶어 졌다. 생각해보니 그런 말은 이곳에서 쓰이질 않고 앞으로 고 쓰이지 않을 것이고 왜 이런지 이유를 설명하다 보면 덴마크 친구 사귀기가 왜 어려웠는지 어느 정도 설명이 될 것 같았다.


개인마다 성격이나 경험도 다르고 그에 따라 매력의 정도가 달라 사교성이 좋고 관계를 잘 만드는 사람도 있겠지만 처음 몇 년 동안 덴마인 친구를 사귀는데 의문이 드는 점들이 많았다. 나는 성격도 활발한 편이고 오랜 외국생활에 친구 만드는 게 문제가 된 적은 없었다. 싱글에 자유로운 몸이라는 더욱 적극적으로 더 많은 친구들을 사귈 수 있었을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결혼을 하고 아이를 키워가며 다른 외국인이 아닌 이곳에서 자란 덴마크인을 나의 친구로 만들기는 생각보다 힘들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왜 그렇게 함 들었는지 이해가 되는 부분이 있다.


덴마크 사람들은 새로운 친구에 대한 니즈가 거의 없다.

이곳에서는 만 6세가 되면 학교생활을 시작한다. 0학년부터 같은 반이 된 한 반 친구들은 그 후 9학년(16세)까지 바뀌지 않고 한 반으로 올라간다. 담임 선생님도 바뀌질 않는다. 처음에 이 말을 듣고 정말 깜짝 놀랐다. 10년이라는 어린 시절의 거의 대부분을 같은 사람들과 같은 공간에서 지낸다. 당연히 가까워질 수밖에 없다. 말 그대로 ‘서로의 머리털 개수까지 알 수 있다’라는 말이 맞을 듯하다. 이사를 가거나 학년을 쉬지 않는 이상 변화는 없다. 그렇게 만들어지는 ‘친구 그룹’이 있다.


Their own circle of friends


그렇게 어릴 시절의 많은 시간들을 함께 보낸 친구들은 나이가 들어도 돈돈한 친구가 된다. 새로운 친구는 있으면 좋지만 없어도 굳이 상관이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미 필요한 친구의 수는 총족 된 상태이니 새로운 친구를 사귀려고 눈에 불을 켜지 않는다. 나처럼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하고 새로운 친구가 필요한 상황과는 다른 상황인 것이다.


나를 들어내는 필살기가 효과가 있을까?

처음엔 나는 좀 자만했다. 나름 내가 정말 괜찮은 사람이고 그들에게 흥미로울 것이라고 생각했다. 다른 나라에서 산 경험 그리고 나에게 플러스가 될 모든 경력을 동원해 나를 어필하기 바빴다. 나는 무엇을 했고 나는 이런 사람이고 나는 결론은 ‘ 꽤 괜찮다’라는 무언의 메시지를 보냈지만 별로 인상 깊어하지도 않았다. 알고 보니 덴마크의 ‘안테의 법칙’ 때문이었다.


네가 누구보다 특별하다고 생각하지 말라.

네가 누구보다 더 나은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네가 누구보다 더 가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평등사상이 기본적으로 깔려 있는 이곳에서 나를 너무나 들어내려고 하는 것은 ‘내가 당신보다 더 나은 사람’이라고  말하려는 것 같은 오해를 낳을 수 있다. 내가 한 특별한 경험은 특별한 경험이고 대단한 경력도 그냥 경력이지만 그것들이 나를 더욱 빛나게 만들고 그것 때문에 나를 그의 친구로 만들지는 않는다. 이제는 누구를 만나도 나의 대단함에 대해 그렇게 피력하려 노력하지 않는다. 기회가 돼서 내가 한 경험들 이야기가 나오면 문맥에 맞게 자연스럽게 붙여 넣으면 된다. 굳이 내가 ‘이런 사람’이라고 광고할 필요가 없어졌다.



그들 삶의 우선순위 상위는 이미 채워져 있다.

덴마크인들의 하루는 계획적이고 우선순위 위주로 돌아간다. 어느 정도 친해졌다 생각해서 나의 모든 친절을 베풀겠다고 너무 가깝게 다가가서 부담을 준 경우를 많이 겪었다. 만남을 원하거나 집에 초대를 받으려면 몇 주 전에 약속을 잡아야 한다. 그리고 그들의 우선순위를 헤치지 않는 선에서 천천히 다가가야 한다. 한국식으로 음식을 가져다주고, 정을 나누고, 서로의 걱정을 함께하는 친구로 가는 길은 아주 길고도 멀다. 이들의 우선순위는 철저히 ‘가족’이다. 이성친구가 없고 정말 자유로운 젊은 사람들이라면 모를까 이미 결혼을 한 사람이라면 가족을 철저히 우선시한다. 


아이가 생기면 친구들과의 대화를 끊더라도 아이의 말에 귀를 더욱 기울인다. 현실적으로 아이들의 대화가 우선시되기 때문에 친구로서의 우선순위는 뒤로 밀려나게 된다. 가족은 일과 친구 등 모든 활동에서 좋은  ‘핑곗거리’가 되며 우선순위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용납되지 않는다.


하지만 기회가 오기는 한다. 그들의 우선순위와 나의 우선순위가 일치되었을 때 드디어 그들과 친해질 수 있는 기회가 온다. 가령 같은 반 아이와 나의 아이가 같은 수영 레슨을 받게 되었을 때, 아이들이 함께 놀 수 있는 플레이 데이트를 할 수 있을 때 등등 그리고 그밖에 그들이 나에게 관심을 보일 확률은 희박하다. 전에는 나도 누군가에게 ‘친절해야만 한다’ ‘ 베풀어야만 한다’ ‘ 그들의 삶에 관심을 가져야만 한다’라는 것을 내 안에 담고 살았다. 그리고 그렇게 못한다면 좋은 사람이 아니라는 강박관념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아이들이 생기고 내 삶조차 돌 볼 시간이 적어지면서 은근한 죄책감이 들었다. 처음에는 내가 그다지 흥미롭거나 대단하지 않아서 그들이 관심을 보이지 않나 생각한 적도 있다. 하지만 지금은 어느덧 나 또한 덴마크인 처럼 행동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내 가족이 우선시하며 적당히 거리로 아이들의 상황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 친구를 사귀게 된다. 수적으로 많은 관계를 맺진 않지만 질적인 면에서는 만족한다. 그리고 친구들의 우선순위를 존중해 줄 수 있게 되었다.


적당한 거리의 미학 

나는 내 감정과 내 삶에 일어나는 일에 세심히 신경 써 주길 바란다. 내가 필요하면 언제든 달려와 나와 기쁨을 함께 해 주고 지침을 달래주고 응원의 메시지를 받기를 바란다.




그런 게 친구지...


덴마크 사람들이 행복한 이유 중에 하나는 다른 사람에 대해 그리고 인생에 대한 낮은 기대치(Low expectation)라고 한다. 기대치를 무조건 낮게 잡는 게 아니라 ‘현실적인 기대치’라고 해야 맞겠다. 가령, 돈을 많이 벌어 부자가 될 거야. 그래서 난 행복한 삶을 살 거야.라는 기대는 비현실적인 기대치 일지도 모른다. 다른 사람에 대한 기대치도 우리는 훨씬 높게 가지고 있다. ‘너는 나에게 이래야만 돼’ ‘친구는 이래야만 돼’라는 기준은 남을 판단하는 씨앗이 되는 것 같다.( 이것은 지금도 내가 힘들어하는 부분 중 하나다) 처음에 새로운 친구의 집에 초대받아서 가고 돌발적이거나 충동족으로 내 느낌에 의해 그들의 집에 가게 된다면 그들은 우선순위를 존경받지 못했다고 생각할 것이며 속 마음을 다 보여주고나 관계가 너무 가깝다면 이러한 거리 유지가 힘들 거라고 생각한다. 빨리 가까워지고 양철 냄비처럼 빨리 끓는 관계도 좋지만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오븐에 로스트를 굽듯 천천히 풍미 로운 관계를 만들어 가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기도 하는 것 같다.



덴마크에서 친구를 사귀는 게 쉽지는 않았다. ‘인싸’는 존재하지도 않고 그러기에 이곳에서 ‘인싸’될 일은 없다.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의 이야기이지만 시간이 지나니 덴마크인들이 이해가 되어지는 부분이 많다. 그리고 어느덧 나도 이곳 사람들과 비슷한 생각들을 하게 되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 현실적인 기대치를 가지고 나의 우선순위를 존경받으며 다른 사람의 우선순위에 맞는 사람들 사이에서 관계를 찾으니 내 마음도 편해진다.


#덴마크 친구 사귀기#얀테의 법칙#현실적 인기 대치#인싸불가#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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